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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평 ===
==== 능력에 따른 인재 채용 ====
조조는 [[군사]], [[학문]], [[무예]], 내정 모두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시문, 그림, 노래 등 풍류에도 매우 뛰어났다. 또한 통솔력도 굉장하고 수하를 감동시키는 방법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인격면에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당시에는 파격적인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였는데선발하 그 기준이 바로 '능력'이었다. 어떠한 분야를 막론하고 한 가지 분야에 뛰어나기만 하면 그 사람의 [[신분]]이 아무리 천하다 해도 조조는 크게 인정해줬다. 또한 아내를 고를 때도 능력을 보고 정하였는데, 최하급 신분인 [[기녀]]였던 변씨도 능력을 인정받아 아내가 되었다.
 
==== 단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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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적벽대전 2에서 조조는 리더십이 뛰어난 지도자로 설명된다. [[전염병]]으로 지친 [[군인]]들을 위로하여 [[전쟁]]에서의 승리의지를 갖게 한다. 또한 [[문학]]에 뛰어나서 조조의 [[시]]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였다.
==== 삼국지 조조전 ====
 
=== 당대의 평가 ===
동시대 사람 중 유명한 두 사람은 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양국(梁國) 사람 [[교현]]은 천하가 장차 도탄에 빠질텐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조조라고 평하며<ref>《삼국지》1권 위서 제1 무제 조조</ref> 자신의 처자식을 부탁하였고,<ref>《위서》 ; 배송지 주석, 《삼국지》1권 위서 제1 무제 조조에서 인용</ref> 여남(汝南) 사람 [[허소]]는 ‘청평할 때는 간적, 난세에는 영웅’이라고 평가했다.<ref>《후한서》68권 열전 제58 허소.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 잘못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배송지]]가 인용한 [[손성]]의 《이동잡어》(異同雜語)에서 나온 말이다.</ref> 반면 오나라의 마지막 승상인 [[장제 (동오)|장제]]는 참칭 국가의 신하인 신분으로 "위나라 백성들이 조조를 따르는 것은 그 위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조조가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