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amobot (토론 | 기여)
봇: 인용 틀 변수 이름 수정
1번째 줄:
'''실록'''(實錄)은 주로 [[동아시아]]의 왕조 국가에서 편찬한 역사서이다. 해당 시대의 [[사관 (벼슬)|사관]]들이 작성한 사료를 바탕으로, 역대 군주들의 치세 기간에 있었던 각종 사실들을 주로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것이다.
 
원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역사"<ref>[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92&docId=560813&mobile&categoryId=159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실록〉]</ref> 또는 "믿을만한 기록" 등의 뜻으로 쓰이던 일반 명사에 가까운 단어였으나, 훗날 실록 편찬이 관례화되면서 특정한 역사 기록물을 부르는 명칭이 되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cid=443&docId=441393&mobile&categoryId=443 네이버 지식백과 〈실록〉]</ref>.
 
== 각국의 실록 ==
=== 중국 ===
실록을 가장 먼저 편찬한 국가는 [[중국]]의 [[양나라]]이다. 양나라 [[소연 (양)|무제]](武帝) 시기의 내용을 기록한 《양황제실록(梁皇帝實錄)》이 문헌상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실록이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한편 실록 편찬 제도가 제대로 성립된 것은 [[당나라]] 때로, 이후 [[송나라]]를 거치며 체제가 지속적으로 정비되어 [[청나라]] [[광서제]] 때까지 계속 편찬되었다. 실록은 [[황제]]가 붕어한 후 [[기거주]](起居注)를 주 자료로 하여 편찬되었으며, 이렇게 편찬된 실록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의 [[이십사사|정사]](正史)가 만들어졌다<ref> {{웹 인용
|url = http://timelin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3s3242b
|제목 = 브리태니커 온라인 〈실록〉
|확인일자= 2010년 1월 8일
|저자 =
|날짜=
|작성일자=
|형식=
|작품명=
19번째 줄:
|원본일자=
|인용=
}} </ref>.
 
현존하는 실록으로는 문인 [[한유]](韓愈)의 개인문집 《한창려집(韓昌黎集)》외집에 일부 수록된 당나라의 《순종실록(順宗實錄)》과 [[북송]]의 《태종실록(太宗實錄)》80권 중 20권, 《[[황명실록]](皇明實錄)》13부 2,964권 및 《[[대청역조실록]](大淸歷朝實錄)》12부 4,404권이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078&aid=0000016358 유네스코 등록 '조선왕조실록'(2)], 국정브리핑, 이종호, 2005년 7월 18일.</ref>. 《황명실록》의 경우 대부분 황제 중심의 기록을 하고 있으며, 실록이 편찬된 후 후대의 황제나 대신들이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관의 논평을 실을 수 없었다<ref>《KBS 역사스페셜》-〈93년만의 귀환, 조선왕조실록〉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구복의 해설, 2006년 8월 11일 방송, KBS.</ref>. 그리고 《대청역조실록》의 경우 [[한자]]와 [[몽골어]], [[만주어]] 등 3개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본문 중간중간에 삽화가 들어가있는 것이 특징이다<ref>《KBS 역사스페셜》-〈93년만의 귀환, 조선왕조실록〉, 2006년 8월 11일 방송, KBS.</ref>.
 
=== 한국 ===
[[한국]]에서 기록상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최초의 실록은 《[[고려사]](高麗史)》의 기본 사료가 된 《[[고려실록]](高麗實錄)》이며, [[조선]]이 건국된 후 [[고려 공민왕|공민왕]]과 [[고려 공양왕|공양왕]]의 실록이 편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ref>《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1398년(태조 7년) 6월 12일 1번째 기사.</ref>. 그러나 《고려실록》은 [[임진왜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 {{웹 인용
|url =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7230010
|제목 = 북에 있고.. 소실되고.. 고려사 미로찾기
|확인일자= 2010년 1월 8일
|저자 = 이새샘
|작성일자날짜 = 2009년 7월 23일
|형식=신문
|작품명=
38번째 줄:
|원본일자=
|인용=
}} </ref>.
 
[[1392년]]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각 왕이 사망한 후《[[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편찬되었으며, 편찬 후에는 내용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부를 인쇄하여 전국 각지에 보관케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472년간 1,893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실록이 남게 되었으며, 이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f>[http://www.unesco.or.kr/mow/menu7_2.html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ref>. 조선의 실록은 기록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왕이라도 사초를 마음대로 볼 수 없었으며, 사신의 논평이 수록된 점이 특징이다. 단 [[일제 강점기]]의 《고종태황제실록》과 《순종효황제실록》은 이러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이들 두 실록을 제외한 것이다.
47번째 줄:
[[일본]]의 정사 중 〈실록〉 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일본문덕천황실록|일본 몬토쿠 천황 실록]](日本文徳天皇実録)》과 《[[일본삼대실록|일본 삼대 실록]](日本三代実録)》이 있다. 단 《일본 삼대 실록》같은 경우 [[세이와 천황]](清和天皇)을 비롯한 3명의 천황 통치 시기에 있던 사실들을 기록하는 등, 중국과 대한민국의 〈실록〉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현재도 [[황실]]이 존재하는 일본에서는 [[고메이 천황]](孝明天皇) 이후 궁내성에 의해 《고메이 천황기(孝明天皇紀)》, 《메이지 천황기(明治天皇紀)》, 《다이쇼 천황기(大正天皇紀)》등이 편찬되었으며<ref> {{웹 인용
|url = http://www.asahi.com/culture/news_culture/TKY200806050064.html
|제목 = 闘病の日々、淡々と記述 「大正天皇実録」第3回公開
|확인일자= 2010년 1월 8일
|저자 = 宮代栄一
|작성일자날짜 = 2008년 6월 5일
|형식=신문
|작품명=
61번째 줄:
|원본일자=
|인용=
}} </ref>, [[2014년]] [[궁내청]]에 의해 《쇼와천황실록(昭和天皇)》의 편찬이 완료되어 같은 해 [[8월 21일]]에 [[아키히토|아키히토 천황]](明仁天皇)과 [[미치코 황후]](美智子皇后)에게 전달되었다<ref> {{웹 인용
|url = http://mainichi.jp/feature/koushitsu/news/20140822k0000m040150000c.html
|제목 = 昭和天皇実録:知られざる事実含む可能性高く…黒塗りなし
|확인일자= 2014년 10월 24일
|저자 = 真鍋光之、古関俊樹
|작성일자날짜 = 2014년 8월 22일
|형식=신문
|작품명=
75번째 줄:
|원본일자=
|인용=
}} </ref>.
 
=== 베트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