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널드 J. 토인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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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en: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CH]], [[1889년]] [[4월 14일]]~[[1975년]] [[10월 22일]])는 [[영국]]의 [[역사가]]이다. [[1973년]] [[9월]] 영국 정부의 초청으로 런던을 방문한 자리에서 토인비는 [[한국]]의 효(孝)사상과 경로사상, 가족 제도 등의 설명을 듣고 당시 86세였던 토인비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의 효 사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니 효 사상은 인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며 “한국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효’ 문화를 전파해 달라”고 부탁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1080|제목=온 가족이 행복한 설|성=|이름=임덕규,영문 월간 Diplomacy 회장·11대국회의원|작성일자날짜=2013-02-04|출판사=서울신문|확인일자=2013-06-01}}</ref>
<ref>{{뉴스 인용|url=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51971|제목=효는 보편적인 덕목|성=|이름=강민철|작성일자날짜=2012-04-17|출판사=경북매일신문|확인일자=2013-06-01}}</ref>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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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우리들은 역사 속에 있다.'라는 실감에 눈을 뜬다. [[1918년]] [[런던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동년 파리 강화 회의 대표 단원으로 활약했다. [[문명]]의 흥망성쇠를 분석한 《[[역사의 연구]]》 12권을 저술했다. 특히 이 책에서 많은 문화유형을 고구(考究)하여 세계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독자적인 문명사관(文明史觀)을 제시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유명한 ‘도전과 응전’의 논리가 집약된 저술로 토인비는 책 서두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문명의 몰락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과거 그리스, 오스만 제국 등 역사의 전례를 연구하다 문명의 생성, 발전, 쇠퇴의 원리를 깨닫게 됐다며 그 결실로 ‘도전과 응전’이란 개념을 창안하게 됐다고 고백하였다. 문명의 성장과 쇠퇴, 고등 문명과 미개 문명, 부모 문명과 자식 문명, 세계 국가, 문명의 시공간적 접촉, 서구 문명의 전망, 역사의 자유 등 토인비만의 지성적 통찰을 통하여 문명 비평가로도 활약하였다.
 
[[1929년]]에는 태평양문제 조사위원으로 [[일본]]에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