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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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이어'(본말)의 준말은 '씌어/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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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 학위를 취득한 후 [[1895년]] [[과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ref>퀴리라는 [[성]](姓)은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딴 것이다.</ref>하였고 피에르 퀴리와의 사이에 두 딸<ref>그녀의 두 딸 [[이렌 졸리오퀴리|이렌]]과 [[이브 퀴리|이브]]는 어른이 된 후 각각 [[과학자]]와 [[음악가]]가 되었다.</ref>을 두었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년 ~ 1906년)는 [[1898년]]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pitchblende, 역청우라늄석)에서 염화바륨에 소량 섞여있는 형태로 염화라듐을 처음 분리∙발견하였고 [[1902년]] 8톤의 폐우라늄 광석을 처리하여 0.1g의 순수한 염화라듐을 얻었다. [[1910년]]에는 마리 퀴리가 염화라듐을 전기분해시켜 금속 라듐을 얻었다.<ref>박준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4&contents_id=7058 라듐(Ra)]. 네이버캐스트. 2011년 12월 14일.</ref>
 
마리 퀴리가 살던 시대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방사능 물질 라듐은 미용은 물론 [[정신장애]] 치료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위험한 선전이 아무런 근거없이 주장되었고,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이 죽어갔다. 어느 화장품이건, 라듐이 들어간다고 씌여져쓰어져 있기만 하다면, 그것은 완판이 되었고 굉장히 있기가 있던 제품이었다.
 
=== 교수 생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