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이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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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이든''' 백작(Robert Anthony Eden, 1st Earl of Avon, [[가터 훈장|KG]], [[1897년]] [[6월 12일]]~[[1977년]] [[1월 14일]])은 [[영국]]의 [[정치가]]이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3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의회에 진출하였다. [[1935년]] 이후 3번이나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5년]] [[윈스턴 처칠|처칠]]의 뒤를 이어 보수당을 이끌고 [[총리]]를 지냈다. 이때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기 위한 [[프랑스]]와의 협정에서 영국의 정책 결정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57년]] [[이집트]] 침공의 실책으로 사임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국의 독립문제가 연합국 지도자들 사이에서 최초로 논의된 것은 [[1943년]] [[3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국무장관 [[코델 헐]]이 워싱턴에서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앤서니 이든과이든]]과 가진 회합 때였다. 이때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한반도를 일정 기간 동안 미국, 중국 및 소련 등 3국의 '신탁통치'아래 두었다가 독립시킨다."는 의견을 처음으로 밝혔으며, 이든은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ref>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편》1권 42쪽 </ref>
 
== 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