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동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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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산성진에서 [[일본 관동군]]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고문으로 눈이 멀어졌다고 한다. 이후 염동진은 관동군에 협력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떤 활동을 했는지 자료는 없다고 한다. 생질 김종진은 독립운동가들과 관련은 없었다고 말한다. [[1940년]]경에 [[관동군]]에서 풀려난 31살 염동진은 [[평양]]으로 돌아왔다.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는 [[관동군]]에 협력한 것이 그의 약점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동군]]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자료가 없어 그가 친일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43년]] [[평양]]에서 대동단이라는 항일 비밀결사를 결성하였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0%9C%EB%8A%94_%EB%A7%90%ED%95%A0_%EC%88%98_%EC%9E%88%EB%8B%A4 이제는말할수있다 비밀결사 백의사]</ref>
 
=== 해방정국 ===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한 후 약탈과 부녀자 겁탈 등 만행에 반발하여 [[현준혁]]을 암살하였다. 이후 [[소련군]]의 감시가 심해지자 월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