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여성운동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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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어린 시절 ===
김학순은 만주 지린(吉林)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 지역을 떠돌다 아버지 사후 어머니와 함께 귀국해 [[평양]]에 정착했으나, [[1941년]] 베이징에서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 각가현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는 비운을 겪었다. 4개월 뒤 한 조선인 상인의 도움으로 위안소를 탈출했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마지막 의지의 대상이던 아들마저 초등학교 4학년 때 익사하자, 서울 종로구의 한 판잣집에 세들어 살며 온갖 궂은 일을 다했다. [[1990년]] 6월 일본이 '일본군은 군대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이에 격분해 폭로할 것을 결심했고, 1년 후에 실행에 옮겼다. [[1991년]] [[8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서 대한민국 내 거주자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했다.<ref name="동아일보20081216">[http://news.donga.com/3/all/20081216/8671820/1 책갈피 속의 오늘 1997년 일본군위안부 김학순 할머니 별세] [[동아일보]] 2008-12-16</ref> <ref name="동아일보20140814">[http://news.donga.com/Main/3/all/20140814/65733914/1 14일 위안부 기림일… 세계 156만명 지지 서명] [[동아일보]] 2014-08-14</ref> [[1991년]] [[12월 6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ref name="동아일보20081216"/> 1994년 6월 6일 제9차 재판 진행 중 위안부 사실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했다. [[1993년]] 한국정신대문제연구회가 당시 일본 총리였던 [[미야자와 기이치]]의 방한을 앞두고 발간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이라는 증언집에서 참담했던 자신의 위안부 생활을 구체적으로 공개해 대한민국 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항의 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일본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위안부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으며, 정신대 문제를 국제사회 문제로 확대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1995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환을 다룬 연극 '노을에 와서 노을에 가다'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 [[1997년]] [[12월 8일]] 평생 모은 약 2천만 원을 '나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이 다니던 서울 동대문감리교회에 기증했다. 1997년 [[12월 16일]] 서울 동대문 [[이화여대 병원|이화여대 부속병원]]에서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동아일보20081216"/>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700289130008&edtNo=7&printCount=1&publishDate=1997-12-17&officeId=00028&pageNo=30&printNo=3067&publishType=00010 한겨레신문, 위안부 최초 증언 김학순씨 별세]</ref> 충남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 묻혔다.
김학순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1924년 만주 지린(길림, 吉林)에서 태어났다. 애초 기학순의 부모는 평양에 거주하였으나 일본인의 등살에 주욱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김학순이 태어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김학순의 부친은 세상을 떠났고, 김학순의 모친이 어린 김학순을 데리고 평양으로 내려왔다. 어렸을 적 김학순은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다녔고 11살 무렵까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김학순이 14세 되던 때, 그의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새아버지는 김학순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있었다
 
모친의 재혼 이후 김학순은 새오빠와는 잘 어울렸지만 새아버지에게는 정을 붙이지 못했다. 자연스레 모친과의 사이도 멀어졌고, 15세 되던 때 김학순의 어머니는 40원을 받고 그를 평양에 있는 기생집 수양딸로 보냈다. 거기서 김학순은 [[기생]] 수업을 받는다. 2년 정도 권번에 다니면서 춤, 판소리, 시조 등을 배웠다고 한다. 기생 수업을 마치고 영업을 하려 했지만 나이가 17세에 불과해 허가를 받지 못했다. 김학순의 양아버지는 중국에 가면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학순과 먼저 수양딸로 온 언니를 데리고 1941년 중국으로 떠난다.
 
=== 위안부 생활 ===
김학순의 증언에 따르면 세 사람을 태운 기차는 평양을 떠나 신의주를 거쳐 [[산해관]]을 지나 [[베이징]](북경)으로 갔다. 하지만 베이징에서 양아버지는 일본군에 체포되고 김학순과 양언니는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김학순은 그날 일본군 장교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증언했다.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언니도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했고, 조선말을 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빨간 벽돌집에서 김학순을 비롯한 5명의 조선 여성들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김학순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은 보통 오후에 몰려들었고, 많은 날에는 하루에도 7~8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한다고 했다.
 
김학순은 만주 지린(吉林)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 지역을 떠돌다 아버지 사후 어머니와 함께 귀국해 [[평양]]에 정착했으나, [[1941년]] 베이징에서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 각가현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는 비운을 겪었다. 4개월 뒤 한 조선인 상인의 도움으로 위안소를 탈출했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마지막 의지의 대상이던 아들마저 초등학교 4학년 때 익사하자, 서울 종로구의 한 판잣집에 세들어 살며 온갖 궂은 일을 다했다. [[1990년]] 6월 일본이 '일본군은 군대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이에 격분해 폭로할 것을 결심했고, 1년 후에 실행에 옮겼다. [[1991년]] [[8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서 대한민국 내 거주자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했다.<ref name="동아일보20081216">[http://news.donga.com/3/all/20081216/8671820/1 책갈피 속의 오늘 1997년 일본군위안부 김학순 할머니 별세] [[동아일보]] 2008-12-16</ref> <ref name="동아일보20140814">[http://news.donga.com/Main/3/all/20140814/65733914/1 14일 위안부 기림일… 세계 156만명 지지 서명] [[동아일보]] 2014-08-14</ref> [[1991년]] [[12월 6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ref name="동아일보20081216"/> 1994년 6월 6일 제9차 재판 진행 중 위안부 사실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했다. [[1993년]] 한국정신대문제연구회가 당시 일본 총리였던 [[미야자와 기이치]]의 방한을 앞두고 발간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이라는 증언집에서 참담했던 자신의 위안부 생활을 구체적으로 공개해 대한민국 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항의 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일본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위안부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으며, 정신대 문제를 국제사회 문제로 확대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1995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환을 다룬 연극 '노을에 와서 노을에 가다'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 [[1997년]] [[12월 8일]] 평생 모은 약 2천만 원을 '나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이 다니던 서울 동대문감리교회에 기증했다. 1997년 [[12월 16일]] 서울 동대문 [[이화여대 병원|이화여대 부속병원]]에서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동아일보20081216"/>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700289130008&edtNo=7&printCount=1&publishDate=1997-12-17&officeId=00028&pageNo=30&printNo=3067&publishType=00010 한겨레신문, 위안부 최초 증언 김학순씨 별세]</ref> 충남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 묻혔다.
 
== 일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