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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년]] 무과에 급제하여 [[남해군|남해]]현감이 되고,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元均)이 패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삼도수군통제사|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막료가 되어 수군재건에 노력하였다. 남해 앞바다에서의 전투에서는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과 [[이순신]]의 곤경을 구하기도 하였다.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부상을 입고도 전사한 [[이순신]]을 대신하여 전투를 지휘한 사실이 왕에게 알려져 [[부산진]] [[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에 발탁되었다.
그는 이순신의 신망이 두터운 인물로 [[1600년]]에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으며, [[1602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다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함경도]]
== 사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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