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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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하다 일제 강점기에 일찍 사망하여 오랫동안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부인인 [[허하백]]이 김복진 사망 후 친일 연설과 기고에 적극적으로 나서 비난 받았고 [[미군정]] 하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실종 또는 타살된 것도 김복진의 이름이 금기시되는 계기가 되었다. 월북 예술인 해금 이후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어 묘소에 묘비도 세워지고 《김복진 전집》, 《김복진의 예술세계》 등이 출간되면서 재평가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수작/습작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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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청주시 출신]]
[[분류:파스큘라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