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다 히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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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 은거 ===
오노다 [[소위]]는 필리핀 [[루방 섬에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제국군 부대의 정보장교였다. [[1945년]] 2월 [[연합군]]이 [[루방 섬]]을 점령하면서 대부분의 일본군은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하였는데, 오노다 소위와 몇명은 정글 깊이 숨어 들었다. 오노다 소위는 처음에 세명의 동료와 함께 [[산]]에서 살았다. 그 중에 한명은 필리핀 정부군에 항복했고, 나머지 두명은 각각 [[1954년]]과 [[1972년]]에 지방 순찰대와 교전중에 [[총]]에 맞아 사망했다. 오노다 소위는 2차 대전이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끝끝내 29년 동안이나 투항을 거부하며 정글에서 홀로 지냈다. 2차 대전중 연합군이 살포한 선전물은 물론 2차대전이 끝나고 필리핀 정부군이 뿌린 '전쟁은 끝났으니 항복하라'는 내용의 선전물까지 자신들을 기만하는 계략이라고 굳게 믿었다. 일본 정부와 오노다의 가족들도 필리핀에 와서 항복을 권유했지만, 이것도 연합군의 계략이라고 생각하여 응하지 않았다. 결국 [[1960년]] 일본 정부는 오노다가 사망한 것으로 공식 판정했다.
 
그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4년 겨울, 필리핀 마닐라 근처의 작은 루방 루뱅에섬에 파견되었다. 그는 250명의 훈련되지 않은 병사를 이끄는 지휘관이었다. 오노나 소위는 미군의 루손 섬 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비행장 활주로를 파괴한 후, 유적전을 벌이라는 명령을 명령을 받았다.
사단장 여코야마 시즈오는 떠나는 오노다 일행에게 말했다.
항복은 물론 옥쇄도 일절 허락하지 읺는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버텨야한다. 반드시 데리러 오마. 병사가 한 명이 남더라도 야자수 열매라도 따먹으며 끝까지 버텨라. 다시말하지만 항복은 물론 옥쇄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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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다, 오노다! 전쟁은 끝났으니 숲에서 나오거라. 어서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
오노다는 그들의 외침을 분명하게 거듭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간사한 미국군이 자신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계략이라고 여겼다.
얼마 후 오노다 일행은 원주민 부락을 습격하여 불태웠다. 그들은 나름대로 유격전을 전개 한 것이었지만, 실상은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한 공격이었으리라. 필리핀 정부의 다급한 연락을 받은 일본 정부는 오노다의 형제를 루뱅섬으로루방 섬으로 급파하여 오노다와 일행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오노다는 이마저도 미국이 이번에는 자신의 가족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하였다. 이후 오노다와 둘은 산에서 내려와 섬의 원주민들을 공격하였고, 때문에 필리핀 정부는 토벌대를 섬으로 보냈다. 종전 9년차인 1954년에 시마다 오장이 토벌대에게 사살되었다. 종전 20년인 1965년에는 고즈카 일병이 사망했다. 그러나 오노다는 개의치 않고 단신 유격전을 수행하였다.
 
종전 30년째인 1974ㅈ년1974년 겨율겨울, 마침내 오노다는 스즈끼 노리오라는 일본인 탐험가에게 발견된다. 스즈끼는 오노다의 이야기에 깊은 흥미를 느껴 그를 직접만나직접 만나 설득을 하고자 하여 루뱅섬으로루방 섬으로 간 것이었다. 스즈끼는 침착한 언행으로 오노다를 안심시킨 후 저간의 사정을 잉기하하였다. 오노다는 그제서야 비로소 일본이 패전하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스즈끼에게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 오노다 소위의 직속 상관이 와서 항복 명령을 내리기까지는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전 직속상관 중 한명이었던 다니구치 요시미가 수소문 되었다. 종전 후 서점을 운영하던 다니구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옛 부하를 살리는 일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루방 섬]]으로 떠났다. 곧 오노다는 그의 전 직속상관 다니구치로부터 투항명령서를 정식으로 수령했다. 다음날 오노다는 필리핀 아크로스 대통령 앞에서 투항의식을 치른 뒤 일본으로 귀환하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마르코스는 오노다가 루방 섬에서 숨어살면서 저지른 살인과 방화를 사면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저 쉬쉬한 것인데, 어쩌면 종전 뒤 필리핀이 일본으로부터 많은 차관을 빌렸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것은 바로 나 오노다 소위의 직속 상관이 와서 항복 명령을 내리기까지는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전 직속상관중 한명이었던 다니구치 요시미가 수소문 되었다. 종전 후 서점을 운영하던 다니구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엣부하를 살리는 일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루뱅 섬으로 떠났다. 곧 오노다는 그의 전 직속상관 다니구치로부터 투항명령서를 정식으로 수령했다. 다음날 오노다는 필리핀 아크로스 대통령의 전 앞에서 투항의식을 치른 뒤 일본으로 귀환 하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마르코스는 오노다 루벵 섬에서 숨어살면서 저지른 살인 및 방화의 사면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저 쉬쉬한 것인데, 어쩌면 종전 뒤 필리핀이 일본으로부터 많은 차관을 빌렸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오노다의 삶은 일본 열도를 감동시켰으며, 일본의 민중 특히 우익단체들은 그를 영웅으로 추숭하였는데, 오노다가 섬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와 함께 그가 스즈끼에게 제시하였던 항복조건, 투항명령서 전달식, 필리핀대통령에 대한 항복, 30년후에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거수경례와 생생한 노병의 눈빛, 조금도 녹슬지 않은 제국 군인의 총검은 그의 흔들림없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군인으로서의 정신을 대변했고 이는 일본 국민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