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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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한양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1936년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로 확장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국 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 및 이용성이 매우 심각하게 왜곡·훼손되었다. 1943년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 7개 구로 나누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었다.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ref>군정법률 제106호 서울특별시의설치 ([[1946년]] [[9월 18일]])</ref>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고양군 뚝도면·숭인면·은평면과 시흥군 도림리·구로리·번대방리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268.35㎢로 확장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6월 28일]]에 점령했으나 [[9월 28일]] [[대한민국]]이 수복하였고, [[1.4 후퇴]] 때 다시 한양을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지만, [[1951년]] [[3월 14일]]에 두 번째로 한양을서울을 수복하고 재건하여 경제 발전을 이루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었고, 시장의 행정적 지위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1963년 현재의 강남 지역인 광주군·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7면 54리를 편입하고 시역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3.75㎢가 되었다. 1973년 [[도봉구]]와 [[관악구]]가 신설되어 11개구가 되었고, 605.33㎢로 시역이 확장되었다. 이후 기존의 행정구역을 분리하여 1975년 [[강남구]], 1977년 [[강서구 (서울특별시)|강서구]], 1979년 [[은평구]], [[강동구]], 1980년 [[동작구]], [[구로구]], 1988년 [[중랑구]], [[노원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 1995년 [[강북구]], [[광진구]], [[금천구]]가 신설되고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2010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서울 주변의 [[인천]]과 [[경기도]]의 위성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광역 도시권|거대한 도시 구조]]인 [[수도권]]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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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yeongjoobudo.jpg|경조오부도 (186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