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포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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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2=[[일본]]
|지휘관1=[[이순신]]<br />[[원균]]<br />[[이억기]]<br />[[권준]]<br />[[이영남]]<br />송희립<br />[[무의공 이순신]]<br />[[정운]]<br />[[황세득]]<br />[[배흥립]]<br />[[이영남]]<br />[[어영담]]<br />[[김완]]<br />[[기효근]]<br />[[우치적]]<br />[[신호]]<br />[[이언량]]<br /> [[이운룡]]<br />
|지휘관2=[[구키 요시타카 (1542년)|구키 요시타카]]<br />[[가토 요시아키]]<br />[[도도 다카토라]]
|병력1=전선 56척
|병력2=전선 42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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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은 여러 번 왜선을 포구 밖으로 유인하려 하였으나 쉽게 응하지 않았다. 조선 수군은 작전계획을 변경하여 번갈아 포구에 침입하여 왜선을 공격하였다. 이에 왜군이 맞서 싸우자 이억기의 함대도 참가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하루 동안 계속된 싸움에서 왜군 3960명이 사살되고 나머지 왜병들은 뭍으로 도망쳤다. 모든 화력을 왜군 기함인 층각선에 집중. 지리적으로는 불리한 여건이었으나 작전 지휘의 승리였다.<ref>[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na_12506021_004&grp=&aid=&sid=12166388&pos=0 원균과 이순신이 한산도·당포에서 승전한 일에 대한 기록], 《선조실록》, 27권 1592년 6월 21일</ref>
 
[[한산도]]에서 대패한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이들과 함께 한산도에서 조선 수군과 싸워야 했으나, 와키자카는 이들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출병했다가 자신도 패하고, 이들도 패하게 만든 것이다.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조선수군과 제대로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였다.
 
== 의의 ==
한산도와 안골포에서 연이어 패한 왜군은 부산으로 움츠려들어 호남 진출을 포기하게 되었고, 이로써 보급에 문제가 생긴 [[고니시 유키나가]]도 [[평양]]에 주저앉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 주석각주 ==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