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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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p125
|꺾쇠표 = 예
}}</ref> 이외에 유일한 증거로 확보된 것은 만원권 위조지폐 2장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위조지폐 사건이 많아서 이를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했고, 당시 공산당이 돈이 궁핍했다는 자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익진영이[[1946년]] 위조지폐를[[11월 찍어23일]] 사회선고공판에서 혼란을유죄가 조장하려인정되었고, 했다는[[이관술]]은 주장에종신형을 반론의받았다가<ref 여지가name="ReferenceA"/> 없다[[한국전쟁]] 발발 이후 처형되었다.<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0402162905756</ref>
이에, [[1946년]] [[11월 23일]] 선고공판에서 유죄가 인정되었고, [[이관술]]은 종신형을 받았다가<ref name="ReferenceA"/> [[한국전쟁]] 발발 이후 처형되었다.<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0402162905756</ref>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이후 공산당의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더이상 풀리지 않게 되었다.<ref name="Referenc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