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슬기 (토론 | 기여)
슬기 (토론 | 기여)
80번째 줄:
이자겸은 스스로 지군국사가 되고 싶어 왕에게 자기 집으로 와서 책서를 수여해줄 것을 요청했고, 임명식 날짜까지 강압적으로 지정하였다.<ref name="pare1996247">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247페이지</ref> 임명 시기와 장소까지 스스로 정하여 강압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지군국사는 한마디로 왕의 권한을 가지고 자기가 섭정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요구는 대신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인종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이자겸을 제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갔다.<ref name="pare1996247"/> 더구나 이자겸이 직접 자신의 집에 와서 직책에 임명해줄 것을 강요한 것을 두고 왕의 인사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한 [[인종]]은 분노했다. 끝내 이자겸의 소망대로 되지는 못했으나, 이 일 때문에 인종은 이자겸을 제거할 뜻을 굳히게 되었다.
 
[[인종]]에게 이자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청한 사람은 내시 [[김찬]]과 [[안보린]]이었다.<ref name="pare1996247"/> 그들은 인종에게 누차에 걸쳐 이자겸을 제거해야 한다고 간청하여 동의를 얻은 뒤 [[동지추밀원사]] [[지녹연]](智祿延)을 포섭하여 왕명이라며 이자겸을 체포할 것을 부탁한다.<ref name="pare1996247"/>
 
[[1126년]] 음력 2월, 인종의 측근인 [[내시지후]](內侍祗侯) [[김찬 (고려)|김찬]](金粲)과 내시녹사(內侍綠事) [[안보린]](安甫麟)이 동지추밀원사 [[지녹연]](智祿延)에게 이자겸·척준경(拓俊京) 등을 주살할 것을 모의하고 [[고려 인종|인종]]에게 이를 상주하자 인종은 동의한다. 그러자 [[지녹연]](智祿延)은 바로 [[상장군]](上將軍) [[오탁]](吳卓)과 대장군(大將軍) [[권수]](權秀), 장군(將軍) [[고석]](高碩) 등을 은밀히 불러 이자겸을 체포하도록 계획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