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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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 [[1785년]]에는 [[부르봉 왕가]]의 치세 말기를 상징하는 스캔들인 [[목걸이 사건]]이 발생하며 그녀에 대한 [[민중]]의 불신은 한층 더 가중됐다. 사건의 개요는 [[잔느 드 라 모트|라 모트 부인]]이 로마가톨릭 주교인 [[루이 드 로앙|로앙 추기경]]에게 마리의 관심을 끌기위해서는 540개 다이아몬드가 박힌 160만 리브르짜리의 값비싼 목걸이 구입해야한다며 주교를 목걸이 구입의 증인으로 서게 하고 목걸이를 가로챈 사건으로 이는 훗날 재판을 통해 사기극으로 밝혀져 사기꾼 [[잔느 드 라 모트|라 모트 부인]]이 국외 추방령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 되었지만 이로인해 왕비의 체면과 위신은 크게 떨어져버렸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음에도 파리 시민들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두 사람에게 누명을 씌었다고 생각했고 [[목걸이 사건]]은 그녀를 향한 증오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러한 와중, 궁정 내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스웨덴]] 귀족 한스 [[악셀 폰 페르센]] 백작의 염문이 확산되고있었다. 그녀는 [[폴리냑 백작 부인]] 등 자신이 마음에 드는 소수의 귀족들만을 극단적으로 총애했고 그로인해 그녀의 그룹에 끼지 못한 귀족들은 그녀와 총신들을 향해 매일같이 악담을 퍼부었다. [[베르사유]] 외의 다른 장소, 특히 [[파리]]에서는 이러한 정세가 심했다. 더구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 하라'를 말을 함으로써 배고픈 민중들의 분노를 가중시키고 처형당하는데 기막힌 일조를 하였다..
 
== 프랑스 혁명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