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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조선 선조|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호위하여 선전관(宣傳官)에 특채되었다. [[선전관]](宣傳官)으로 재직했을 때 [[선전청]](宣傳廳) 편액을 썼는데, 선조가 그 필법이 신묘함을 칭찬하면서 전죽[[현감]](箭竹縣監)에 제수되었다.<ref>전북향토문화연구회, 《전북의병사》. 1990년</ref>
 
[[1601년]](선조 34년) 식년 무과(式年武科)에 급제하여<ref>『만력28년경자식년퇴행어신축하문무과방목(萬曆二十八年庚子式年退行於辛丑夏文武科榜目)』</ref>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 전농시주부(典農寺主簿)를 거쳐, [[1604년]] 제주[[판관]](濟州判官)이 되었다.<ref>[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na_13709006_007 《선조실록》 178권, 37년(1604 갑진 / 명 만력(萬曆) 32년) 9월 6일(계축) 7번째 기사]</ref> 이후 강상[[현감]](康翔縣監)을 지내다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전라도 [[남원시|남원]](南原) 주생면(周生面) 대지리으로대지리로 돌아왔다.<ref>『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1990년)</ref>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 가족 관계 ==
* 조부 : 중직대부(中直大夫) 전행예산현감예산현감(前行禮山縣監) 방응청(房應淸)
** 백부 : 방덕기(房德驥)
** 백부 : 방덕준(房德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