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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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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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견신검(甄神劍)
|출생일 =
|사망일 = [[936년]] [[11월 15일]]([[음력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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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신검]]의 군사들이 이에 맞서기 위해 나섰으나, [[견훤]]의 사위인 매제 [[박영규 (후백제)|박영규]](朴英規)가 [[견훤]]을 내쫓은 [[견신검]]에게 불만을 품고 [[고려]]로 귀화하면서 초기부터 전세가 불리해졌다. 게다가 [[고려]]군 앞에 나타난 견훤을 보자 [[후백제]]의 병사들은 대항의 의지를 잃고 말았다. 결국 싸우기도 전에 [[애술]](哀述)을 비롯한 많은 장수들이 항복하였고, [[견신검]]도 황산까지 밀려나자 할 수 없이 항복하였다.
 
[[견훤]]은 [[견신검]]이 아버지인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죄를 벌하여 달라고 [[태조 왕건]]에게 요청하였다. 그러나, [[왕건|태조]] 반역의 책임이 [[견신검]]을 부추긴 [[견신검]]의 아우 [[양검]]과 [[용검]], 그리고 [[능환]] 등에게 있다고 하여 그들에게만 벌을 내렸다. 결국 [[양검]]과 [[용검]], [[능환]] 등은 처형되었으나 [[견신검]]은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러나, [[왕건]]에게 항복한 이후에 [[견신검]]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견신검]]도 함께 처형을 당했거나 훗날에 죽임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