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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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에서 10세기에 이르는 2세기는 골품제를 기반으로 하는 신라 고대 국가가 붕괴되고, 그 속에서 [[호족]] 출신인 왕건(王建)이 나타나 고려를 세웠으며, 그 고려가 점차 봉건적인 귀족 국가로 확립되는 시기였다. 동시에 중국에서도 당(唐)이 망하고 5대(五代)라는 혼란기가 송에 의해 수습·통일되면서 한 문화가 복구되어 가는 시기이며, 한편으로는 북방 민족의 재등장이 촉진되고 있어 그 세력이 커다란 압력으로 남방에 미치던 때였다. 다시 말하면 성당 문화(盛唐文化)가 밀려들어 통일 신라의 문화가 극성기에 달했던 8세기를 끝으로, 신라는 당의 쇠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폐쇄적인 지배 체제의 모순이 격화되어 드디어 붕괴되었으며, 후삼국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10세기에 이르러 고려 왕조로 재정비되어 갔던 것이다. 특히 이 시기는 중국의 간섭이 없는 독자적인 ‘좌절과 흥기’의 반복으로써 고대 국가가 붕괴되는 역사의 일대 전환점이 되는 때였으며, 외부 도전과 압력에서가 아니라 내부적인 승화 과정이 촉진되었던 시기였다.
 
==역사==
==신라의 쇠퇴==
{{한국사}}
9세기 후반 신라에서는 국가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중앙 귀족들 간의 권력 투쟁이 치열해지고,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지방에서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새로운 사상을 갖춘 호족 세력이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