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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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저 시절 ===
==== 출생과 왕손 ====
세조 이유는 [[1417년]] [[음력 9월 24일]] 당시 본궁(本宮)에서 [[충녕대군]]이던 [[조선 세종|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차남이자 네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ref name="WDL">{{cite web |url = http://www.wdl.org/en/item/4163/ |title = Life History and Sermon of Buddha Abstracted from Buddhist Scriptures |website = [[World Digital Library]] |date = 1447 |accessdate = 2013-05-24 }}</ref>
그는 보통의 왕자로 여생을 보낼 운명이었으나, 그가 태어날 무렵 할아버지 [[태종]]은 자신의 뒤를 이을 [[양녕대군]]이 세자로서의 위치가 상당히 불안하고, 주색을 즐기는 등의 많은 문제를 일으키자, 세자를 교체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2살때, 숙부인 [[성녕대군]]이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인 [[충녕대군]]이 왕세자를 거쳐 [[세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바로 입궐하지 못하였는데, 세종이 즉위한 뒤에도 세조는 궁밖 민가에서 자랐다. 그것은 당시 유아 사망의 정도와 궁실의 분위기가 그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와 더불어 큰할아버지인 정종과 할아버지인 태종의 승하가 잇따랐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기에는 아직 환경이 좋지 않은 탓도 있은 듯하다.
 
민가에서 성장한 것은 왕자 유에게 오히려 많은 영향을 주었다. 궁실에서 애지중지되어 귀하게 자라 세상물정을 모르고 자라기보다는,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민간의 일들을 상세히 겪으면서 활달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그리하여있었던 그는 모든 어려움과 사실과 거짓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고귀함은 그대로 그에게 전해져 이미 남다르게 성숙하였다. 왕자로서의 고귀함과 도량이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배어져 있었던 것이다. 세조는 또한 이미 다섯 살의 나이에 <효경(孝經)>을 외워 주위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영특함은 자라면서 형제들 중 단연 뛰어나 세종과 형인 문종에게 인정을 받았다하였다.
그는 보통의 왕자로 여생을 보낼 운명이었으나, 그가 태어날 무렵 할아버지 [[태종]]은 자신의 뒤를 이을 [[양녕대군]]이 세자로서의 위치가 상당히 불안하고, 주색을 즐기는 등의 많은 문제를 일으키자, 세자를 교체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2살때, 숙부인 [[성녕대군]]이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인 [[충녕대군]]이 왕세자를 거쳐 [[세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바로 입궐하지 못하였는데, 세종이 즉위한 뒤에도 세조는 궁밖 민가에서 자랐다. 그것은 당시 유아 사망의 정도와 궁실의 분위기가 그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와 더불어 큰할아버지인 정종과 할아버지인 태종의 승하가 잇따랐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기에는 아직 환경이 좋지 않은 탓도 있은 듯하다.
 
민가에서 성장한 것은 왕자 유에게 오히려 많은 영향을 주었다. 궁실에서 애지중지되어 귀하게 자라 세상물정을 모르고 자라기보다는,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민간의 일들을 상세히 겪으면서 활달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어려움과 사실과 거짓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고귀함은 그대로 그에게 전해져 이미 남다르게 성숙하였다. 왕자로서의 고귀함과 도량이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배어져 있었던 것이다. 세조는 또한 이미 다섯 살의 나이에 <효경(孝經)>을 외워 주위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영특함은 자라면서 형제들 중 단연 뛰어나 세종과 형인 문종에게 인정을 받았다.
 
==== 대군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