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트알아랍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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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이름툴팁 = 샤트알아랍 강의 아랍어·페르시아어 표기
| 지리유형 =
<!-- *** 이름 **** -->
| 어원 =
|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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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Shat Al-Arab-Basra.jpg
| 그림설명 = [[이라크]] [[바스라]] 부근의 샤트알아랍 강
<!-- *** 나라 *** -->
| 국기사용안함 =
| 나라 =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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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원지좌표제목 = 샤트알아랍 강의 발원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합류점 (이라크의 알쿠르나)
| 발원지위도 = 30.99972
| 발원지경도 = 47.44439
<!-- *** 2차 발원지 *** -->
| 2차발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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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설명 =
| 지도1= Shatt al arab.png
<!-- *** 위치 지도 *** -->
| 위치지도 =
| 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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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지도2 =
| 위치지도2라벨위치 =
<!-- *** 웹사이트 *** -->
| 웹사이트 =
<!-- *** 참고 문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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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이라크 전쟁 관련 ==
[[이란]]과 [[이라크]]간 적대감의 중요 요인 중 하나는 페르시아만 입구의 샤트알아랍 강(이란명은 아르반드 루드)이라는 수로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분쟁이다. 샤트 알 아랍 수로는 양국을 경계짓는다. 이곳은 양국의 석유 수출에 중요한 수단이었다. 수로의 경계를 결정하는 권한은 역사적으로 힘이 센 쪽에 있었다. [[1937년]] 영국이 이라크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 수로의 경계는 동쪽(이란 쪽)으로 정해졌다. 영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 이란은 [[1969년]] 4월 수로의 안쪽으로 선박을 출입시켰다. 이라크는 내부 사정으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고, [[1975년]] 3월 [[알제 협정]]으로 이란의 우세가 확인됐다. 알제 협정시 협상을 맡았던 [[사담 후세인]]은 [[1980년]] [[9월 17일]] 알제 협정 폐기를 선언한 뒤 [[9월 22일]] 이란-이라크 전쟁을 개시했고, 이후 8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
 
{{토막글|지리}}
 
[[분류:이라크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