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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508년 8월에 태어났으며 무제와 [[완령영]]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째 아들이다.
 
7살에 상동왕에 책봉되고 547년 정월, 형주, 옹주 등 9주 군사도독을 맡고 형주자사가 되었다.
 
549년, 하남왕 [[후경]]이 난을 일으키고 소연을 유폐시켰다가 소연이 굶어 죽자 소역은 작은 아들을 서위에 볼모로 보내고 북제와 화의를 맺었다. 이에 서위는 볼모를 받지 않고 형제 관계를 맺기 원했고 북제는 소역을 양나라 상국으로 임명했다. 6월, 소역은 후경을 토벌할 작정으로 군대를 모집하고 하동왕, 상동자사였던 [[소예]]에게 3번이나 사람을 보내 식량을 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소예는 모두 거절하자 소역은 무력으로 소예를 공격했다. 이에 소예의 아우였던 악양왕, 옹주자사 [[소찰]]은 소역의 근거지였던 강릉을 공격해서 소찰의 형 소예를 구원하려다가 오히려 패배하고 도망쳤다. 그래서 소찰은 서위에 구원을 보내 번국이 되기를 원했다. 이듬해 4월, 평남장군 왕승변이 장사를 함락시키고 소예를 죽였다. 551년 6월, 후경은 파릉에서 대패하고 건강으로 도주했으며 소역은 군사를 이끌고 계속 추격했다. 7월, 후경은 소강을 협박하여 예장왕 소동에게 양위하게 하고 소동을 황제로 세웠다가 11월, 소동을 폐하고 스스로 한(漢)나라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3월, 왕승변과 시흥태수 진패선의 공격을 받고 후경은 가죽 주머니에 두 아들을 넣어 백여 기를 데리고 동으로 달아났다. 배를 타고 장강을 건너 북으로 도주할 생각이었지만 추격병이 계속 쫒아왔다. 이에 빨리 도주하기 위해 자기 자식들을 강물에 집어 넣고 나름대로 오래 갔지만 지쳐 잠든 사이에 부하들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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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조의 황제}}
{{토막글|군주}}
[[분류:508년 태어남]]
[[분류:554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