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포인트 찰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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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Checkpoint Charlie sign.JPG |200px|left|thumb|Replica of the famous sign[[베를린 at장벽]] the옆에 former설치되어잇던 East–West유명한 Berlin표지판의 border복제품
File:Bundesarchiv Bild 183-87665-0002, Berlin, Mauerbau, Checkpoint Charlie.jpg|East German guards checking permits of bus passengers going through the checkpoint in October, just after the Wall was built on 13 August 1961
File:Bundesarchiv Bild 183-88574-0001, Berlin, Mauerbau, Friedrichstraße.jpg|Bus going through the East Berlin check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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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위기 : 소련과 미국 탱크 교착사건 ===
[[파일: EUCOM_Checkpoint_Charlie_Standoff_1961.jpg|400px|섬네일|1961년 소련과 미국의 탱크 교착사건]]
[[베를린 장벽이장벽]]이 지어지고 나서 얼마 후, 미국과[[미국]]과 구소련의[[소련]]의 탱크가[[탱크]]들이 체크포인트 찰리를 둘러싼 대치상태가 발생했다. 사건은 1961년 10월 22일에 동독군인이동독 군인이 오페라를 보기위해 동독을[[동독]]을 통과하려는 [[미국]] [[외교관]] 알란 라이트너(''Allan Lightner'') 의 여행문서를 검문하다 사건이 발생했다. 10월27일 구소련의[[소련]]의 10개 탱크와[[탱크]]와 똑같은 숫자의 미군탱크가[[미군]] [[탱크]]가 체크포인트 양쪽 100야드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대치상황은 10월28일에 미군과[[미국]]과 소련의[[소련]]의 화해로 탱크를 철수시키면서 평화롭게 끝이 났다. 미국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이(''Robert F. Kennedy'')KGB스파이[[KGB]] 스파이 기요르기 보라샤코브(''Georgi Bolshakov'') 사이의 논의가 암묵적 협의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ref>Kempe, Frederick (2011). Berlin 1961. Penguin Group (USA). pp. 478–479. ISBN 0-399-15729-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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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엽기적인 탈출들===
'''[https://gb.fotolibra.com/images/previews/355420-checkpoint-charlie-just-after-berlin-wall-built.jpeg 1961년 9월6일 : 베를린 장벽이 지어지기 시작한 직후의 체크포인트 찰리]'''<br />
'''[http://flashbak.com/wp-content/uploads/2014/11/PA-3389259-11-1024x697.jpg 1961년 9월9일 : 베를린 장벽을 쌓아 올리고 있는 동독 경찰의 모습 배경에 동독주민들이 탈출 시도했을법한 건물이 보인다]'''<ref>http://flashbak.com/the-building-of-the-berlin-wall-and-its-first-year-in-photos-august-13-1961-1962-24115/</ref><br />
베를린장벽은[[베를린 장벽]]은 1961년 동독정부의[[동독]]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으로영향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1961년 예상치 못한 다양한 탈출의 방법이 있었다. 체크포인트 찰리가 초기에는 간단한 문으로만 분단선을분단 선을 막았었고, 베를린 장벽 또한 낮았기에 다양하고 기발한 탈출사례들이 생겨났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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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flux.com/journal_images/1241414673car.jpg?b8c429 컨버터블에 타서 탈출 시도하던 모습]''' <br />
 
그중 동독주민들이 도망치기위해 차로 체크포인트 찰리의 문을 들이받고 탈주를하기도했었고. 접이식 자동차(컨버터블)로 장벽에 접근해 자동차를 벽에 밀착시킨 후 지붕을 내려 서독으로 도망쳤다. 어떤이들은 고속열차를 몰고 경로이탈을 범하고 분단선을 넘기도했었고, 심지어 열기구를 타고 탈주한 기막힌 사건도 발생했었다. 1979년도에는 분단선 아래로 16일 동안 동굴을 파서 단체로 서독에 입성하기도 했었고. 동독주민 만큼 탈주가 급했던 동독군인들 마저도 가뿐히 가시철사를 뛰어 넘어가기도 했었다. 그외에도 분단선 근처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뛰어 넘어가는 시도들도 많았다.<ref>http://mentalfloss.com/article/28517/8-creative-ways-people-went-over-berlin-wall</ref>
 
그렇기에 이후에는 체크포인트 찰리는 자동차들의 무분별한 질주를 막기위해 더 튼튼한 장애물을 세웠고고. 장벽 또한 위아래로 길이가 늘어졌고 여러 차례를 거쳐 거대한 콘크리트벽으로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