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포 브루넬레스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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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6년 착공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1418년까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전 세기에 건물이 설계되었을 때, 아무도 [[로마]]에 있는 [[판테온 (로마)|판테온]]의 돔보다 규모가 큰 이 돔을 어떻게 지을지 의견을 내지 못하였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 이래로 이러한 크기의 돔은 없었다.) 도시 신부들이 [[버트레스]]를 금지했기 때문에 길고 강한 (그리고 충분한 양의) 비계로써 작업을 위해 서까래를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했다. 이 크기의 돔이 어떻게 지어질 수 있을지 또는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압축응력이 이 시대에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과, 또 이 시기에 사용된 모르타르가 꽤 오랜 시간 비계 위에서 변형을 유지하면서 며칠간 기다려야 자리를 잡는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ref>Ross King,''Brunelleschi's Dome, The Story of the great Cathedral of Florence'', Penguin, 2001</ref>
 
1419년 양모 상인 길드인 아르테 델라 라나(Arte della Lana)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설계 경기를 연다. 두명의 주요 경쟁자는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로 브루넬레스키가 우승하여 의뢰를 맡게 된다. 설계 경기는 계란을 대리석위에 세우는 것이였다. 경기에 참가한 유명한 건축가들중건축가들 중 오직 브루넬레스키만 해냈는데, [[조르조 바사리]]의 의하면 "...그는 계란의 한 쪽을 대리석에 쳐서 계란을 바로 세웠다... 다른 건축가들이 자신들도 그런식으로는 세울수 있다고 항의하자, 브루넬레스키는 웃으면서 자신의 디자인을 보면 다른 건축가들도 동을 지을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설계 경기에서 브루넬레스키의 답은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도 알려져있다.)
[[파일:Santo Spirito, inside 1.JPG|thumb|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네이브, 1441-1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