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신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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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시조의 5세손 [[신덕린]](申德隣)이 고려말에 좌사의대부와 예조와 공조판서 판서에 이르렀고,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공조참의를 역임한 아들 [[신포시]](申包翅)를 데리고 [[개성]] [[두류산]]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키다가 다시 [[광주]] [[서석산]]으로 옮겨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신포시]](申包翅)의 아들 [[신장 (조선)|신장]](申檣), [[신평]](申枰), [[신제]](申梯)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맏아들 신장(申檣)은 직제학과 부제학을 거쳐 공조참판에 올라 남산지곡을 지었으며, 오랫동안 대제학에 있었고, 둘째 아들 신평(申枰)은 사간원의 정언을 역임했고, 막내 신제(申梯)는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신장]](申檣)의 아들 신맹주(申孟舟), 신중주(申仲舟), [[신숙주]](申叔舟), 신송주(申松舟), 신말주(申末舟) 5형제는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다.
 
== 인물 ==
* [[신숙주]](申叔舟) : 6대간 거치면서 대제학과 병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나 [[성삼문]] 등 [[사육신]]과는 철천지구(徹天之雠)로 남게 된다.
* [[신광수]](申光洙) : 첨지중추부사 신호의 아들. [[조선]] [[영조]] 때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로 [[제주도]]에 가서 그 곳의 풍토·산천·조수·항해 상황 등을 적은 부해록을 지어 문명을 떨쳤고 그의 대표작으로 당시에 널리 애송되었던 관산용마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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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 ==
[[신성용]]의신성용의 7세손에서 [[암헌공파]](巖軒公派)·[[정언공파]](正言公派)·[[감찰공파]](監察公派)의 3파로 갈라졌다.
* 암헌공파(巖獻公派) - 신장(申檣)
** 서윤공파(庶尹公派) - [[신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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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 [http://www.goshin.or.kr/ 고령신씨 대종회]
 
 
[[분류:한국의 성씨|신, 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