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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왕자다. 성질이 패망(悖妄)하여 술만 마시면서 행패를 무렸으며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비록 임해군(臨海君)이나 정원군(定遠君)의 행패보다는 덜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해마다 10여 명에 이르렀으므로 도성의 백성들이 몹시 두려워 호환(虎患)을 피하듯이 하였다. 이에 양사(兩司)가 논계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안치시켰는데, 이 때에 이르러 죽었다. 상이 특별히 명하여 그의 직을 회복시켜 순화군(順和君)이라 하고, 익성군(益城君) 이향령(李享齡)의 아들 이봉경(李奉慶)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 - 선조 209권, 40년(1607 정미 / 명 만력(萬曆) 35년) 3월 18일(신사) 3번째기사, 이보의 졸기 }}
 
시신은 [[양주군]] [[별내면|별비면]] 청학리(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의 어머니 [[순빈 김씨]] 묘소 아래에 안장되었으며, 묘비석과 신도비는 20세기 이후에 세워졌다. 사후 희민(僖敏)의 시호가 추서되었다. 생전 부인 장수황씨에게서는 자녀가 없고, 서녀만 2명이 있었으므로 사촌 형인 [[익성군 (1566년)|익성군]]의 아들 진릉군 태경을 사후입양하였다.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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