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마 (방호순양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top
번역 다듬기
57번째 줄:
 
== 개요 ==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후 혼란의 시기가 지나가고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의 파도격랑 가운데에서속에서 국토방위와 해외진출을 위해 한반도를[[한반도]]를 그들의 생명선으로 하는삼는 국가전력을국가 세웠다전략을 수립했다. 그것에이러한 시도에 대립되는맞선 것이상대는 역사적으로 [[조선]]의 후견적인[[종주국]]의 위치를 맡고잇는가지고 있었던 [[청나라]]가 있었다. 따라서 점차 청일양국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되게 되었다수순이었다.
 
[[1885년]], 청나라 [[북양함대]]에 배비된배치된 철갑함 진원과[[진원 (전함)|진원]](鎭遠)과 [[정원 (전함)|정원]] (定遠) 두척은 일본 해군에 충격을 안겨줬다주었다. 양함의두 함의 기준[[배수량]]은 7,220t에220톤에, 주포는 30.5cm 2연장포 2기를 갖추고 있었고, 현측장갑의현쪽 최대두께는장갑의 최대 두께는 305mm에 달해 당시 열강해군이서양 열강 해군이 극동에 배치한 대형함들을 능가하는 거함이었다. 당시의 일본해군에서일본 해군에서 보면 괴물과 같은 거대 전함이었다거함이었다.
 
다급해진 일본은 적어도 주포의 구경에서만은구경에서 만큼은 진원, 정원을 능가하는 군함을 만들어 대항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설계사상에요구사항을 기초를설계의 기초에 두고 제작된것이제작된 것이 [[마츠시마급 순양함]]이었다. 최대 특징은 진원, 정원의 주포 구경을 상회하는 32cm 38구경의 단장포에 있었다. 이 단 1문의 거포를 마츠시마에는 뒷갑판뒷갑판에, 다른 두척에는 앞갑판에 거치하였다. 그 때문에, 동급함이라고 해도 마츠시마의 외형은 같은 급의동급의 다른 2척과는두 척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보였다.
 
하지만 32cm포라는 거포를 얹는얹은 플랫폼으로서의플랫폼을 가진 선체는 당시의 일본의 정비도크와정비 도크와 항만의 시설에시설로 있어서감당할 수 있는 배는 4000톤대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4000톤급의 함체에 무리하여무리하게 함포를 탑재하는 처지가 되었다.
 
프랑스해군의프랑스 설계기술해군의 장교설계 기술장교 [[루이 에밀 베르탕]]은 당시의 [[프랑스 해군]]의 방호순양함과[[방호순양함]]과 같이 선체 크기에맞는크기에 맞는 중구경의 포를 다수 탑재하고 기관출력을기관 출력을 늘린 고속순양함을 제안하였지만, 당면한 위협에 급한급했던 일본은 제안을 거부하였다거부했다. 이렇게 해서 순양함급의 선체에 전함급의 거포를 탑재하게 되었다. 그 대신 기관과 장갑은 약화되었다. 이것은 아이에게 대형 권총을 들고 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필연적으로 포탑을 처음 0도 방향에서 좌우로 돌리면, 포신의 무게로 인해 중심이 흔들려 함체가 기울어서 계산한대로 앙각을 잡지 못하고, 포격을 하면 반동으로 함체의 자세가 뒤틀려 진로까지 바뀌는 사태가 일어났다. 게다가 중요한 거포 자체도 일본 해군의 장교, 사병 모두 조작 미숙으로 만족스럽게 다루지 못하고 고장이 잦아 실전화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시 말해 아이에게 대형의 권총을 갖게해 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탑을 처음의 0도 방향에서 좌우로 선회하면 포신의 중량감으로 인해 중심이 흔들려 함체가 기울어서 계산대로의 앙각을 잡지 못하고, 포격을 하면 반동으로 함체의 자세가 뒤틀려 진로까지 바뀌는 사태가 되었다. 게다가 중요한 거포 그 자체도 일본해군의 사관, 병사 모두 기술 미숙으로 만족스로운 조작을 하지 못하고 고장이 빈발해 실전화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실제,실제로 [[황해 해전 (1894년)]]에서 청나라 [[북양 함대]]와 대결했을 때, 마츠시마(松島)로부터마츠시마로부터 발사 가능했던발사되었던 32cm 포탄은 단 4발에 불과했고,불과했다. 다른 동형함은,동급함도 이츠쿠시마(嚴島)가이츠쿠시마가 5발, 하시다테(橋立)이하시다테가 4발 뿐이었다. 명중탄이 아예 없었다는 설도 있지만, 포획 후의 진원(鎭遠)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따르면 32cm 포탄의 직격파공이직격 1개파공이 하나가 있었다고 여겨진다추측된다. 하지만, 그 기록을 인정한다하여도인정한다고 해도 1발 밖에 명중하지 못했던 것이 된다것이다. 무리하게 장착한 거포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못했던 것은것이 확실했다. 오히려, 함대작전 행동의함대의 고속빠른 기동성과기동력과 12cm포 이하의 [[속사포]]에 의한 전과가 컸다. 이 사실은 이후의 일본해군일본 제국 해군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해군에 큰 교훈을 주었다.
 
[[러일전쟁]]에서는 2선급으로서 다루어졌기배치되었기 때문에, 실전에의실전에 참가는투입되는 경우는 적었고, 오로지 초계 및초계와 소해 임무에임무만을 종사했다담당했다.
 
[[1908년]], 해군사관학교 제35기로 졸업한 소위후보생을 실은 원양 항해 도중, 기항한 [[타이완]]·마공(馬公)에서 폭침[[마궁 했다.시]]에서 순직자는폭침하여, 승무원 370 명중 207명에 달했다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덧붙여 청일 전쟁 직전에 개정된 군함단대 정원표에 의하면, 마츠시마급의 세함정은세 함정 모두 , 대령(함장) 1, 소령(부장) 1, 대위 7, 소위 7, 기관소감(기관장) 1, 대기관사 3, 소기관사 1, 대군의관 2, 소군의관 1, 대회계 2, 소회계 1, 상등병조 3, 기관사 4, 선장사(船匠師) 1, 1등 하사 20, 2등 하사 22, 3등 하사 15, 1등 졸1등병 53, 2등 졸2등병 96, 3등 졸 및 4등3등병과 졸을4등병을 합쳐 114명으로정원이 여겨졌다114명이었다.
 
이상하지만, 사관은침몰 당시 탑승한 장교는 27명( 항해병과 16, 기관과 5, 군의관과 3, 회계과 3명.), 준사관은 8명, 하사는 57명, 졸은병사는 263명으로, 총계 355명으로 여겨졌다추측되었다.
 
== 약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