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마 (방호순양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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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해군의 설계 기술장교 [[루이 에밀 베르탕]]은 당시의 [[프랑스 해군]]의 [[방호순양함]]과 같이 선체 크기에 맞는 중구경의 포를 다수 탑재하고 기관 출력을 늘린 고속순양함을 제안하였지만, 당면한 위협에 급했던 일본은 제안을 거부했다. 이렇게 해서 순양함급의 선체에 전함급의 거포를 탑재하게 되었다. 그 대신 기관과 장갑은 약화되었다. 이것은 아이에게 대형 권총을 들고 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필연적으로 포탑을 처음 0도 방향에서 좌우로 돌리면, 포신의 무게로 인해 중심이 흔들려 함체가 기울어서 계산한대로 앙각을 잡지 못하고, 포격을 하면 반동으로 함체의 자세가 뒤틀려 진로까지 바뀌는 사태가 일어났다. 게다가 중요한 거포 자체도 일본 해군의 장교, 사병 모두 조작 미숙으로 만족스럽게 다루지 못하고 고장이 잦아 실전화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File:MatsushimaGunJapanesePrint.jpg|thumb|작전 중 마쓰시마의 거포, [[고바야시 기요시카]], 1894]]
 
실제로 [[황해 해전 (1894년)]]에서 청나라 [[북양 함대]]와 대결했을 때, 마츠시마로부터 발사되었던 32cm 포탄은 단 4발에 불과했다. 다른 동급함도 이츠쿠시마가 5발, 하시다테가 4발 뿐이었다. 명중탄이 아예 없었다는 설도 있지만, 포획 후의 진원(鎭遠)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32cm 포탄의 직격 파공이 하나가 있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그 기록을 인정한다고 해도 1발 밖에 명중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리하게 장착한 거포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 확실했다. 오히려, 작전 함대의 빠른 기동력과 12cm포 이하의 [[속사포]]에 의한 전과가 더 컸다. 이 사실은 이후의 일본 제국 해군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해군에 큰 교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