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케이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63번째 줄:
== 법률가 및 교수로의 케이건 ==
 
케이건은 1987년 연방 D.C. 순회 항소 법원의항소법원의 애브너 미크바 판사 아래서 재판 연구관으로 일했고, 1988년에는 연방 대법원의 [[서드굿 마셜]] 대법관의 재판연구관으로 일했다. 마셜은 160cm의 케이건에게 "쇼티"(shorty)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ref name='confidence-and-canniness' /> 이후 케이건은 송무로 유명한 워싱턴 DC [[세계의 로펌|로펌]] 윌리엄스 앤 코놀리(Williams & Connolly)에서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1991년에 케이건은 [[시카고대학교 법학대학원|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의 교수가 되었으며 1995년에 종신권을 얻었다.<ref>{{웹 인용|성=Sweet |이름=Lynn |url=http://blogs.suntimes.com/sweet/2010/05/elena_kagan_at_bat_played_chic.html |제목=Elena Kagan played Chicago-style 16-inch softball at U of Chicago|출판사=Chicago Sun Times Blogs|출판일자=2007-11-20 |접근일자=2010-05-11}}</ref> 시카고 대학교에 있으며 케이건은 연방 대법원의 [[R.A.V. 대 세인트폴 시]] 사건 판결이 난 뒤, "R.A.V 사건 이후의 혐오 발언 및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규제"라는 수정 헌법 1조에 대한 글을 썼다. 또 "사적 발언, 공적 목적: 수정 헌법 1조의 정신 아래서 본 정부 의도의 역할"은 정부가 규제를 위해 하는 발언의 중요성을 논했으며, "청문회의 잡음, 과거와 현재"라는 스티븐 카터의 책에 대한 리뷰에서는 법관 청문회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