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라쿠다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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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라쿠 다이는 [[간바쿠]]인 히데요시가 정무를 보던 정청 겸 저택으로 [[1586년]] 2월에 착공하여 다음해 9월에 완성했다. [[규슈 정벌]]을 마친 히데요시는 [[오사카 성]]에서 이곳으로 와 정무을 집행하였다. [[1588년]] 5월 9일 [[고요제이 천황]]의 유행<ref>유행(遊幸): 임금이 대궐밖으로 거동함 = 행행(行幸)</ref>을 맞이하여 향연을 배풀었다. 또한 [[덴쇼 소년사절]]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알현도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금박을 입힌 기와를 사용하는 등 모습이 호화로웠다. 다이(第)는 원래 저택이라는 의미지만, 여기에는 천수가 중심에 있는 혼마루와 니노마루 등이 있었고, 주위를 해자로 둘러서 방어하는 일본 성의 특징도 갖추고 있었다. 저택내에는 일본의 다조(茶祖)로 불리는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인 [[센노 리쿠리큐]]의 집도 지어졌으며 [[1587년]] 10월에는 [[기타노 신사]] 앞에서 다도회인 [[기타노 오챠노유]]가 열렸다.
 
[[1591년]] 12월 히데요시는 간바쿠직을 조카인 [[도요토미 히데쓰구]]에 물려줄때 주라쿠 다이도 히데쓰구의 거처가 되었다. 이후 고요제이 천황이 디시 여기에 들러 머물렀다. [[1594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후시미 성]] 축성을 착수했는데 다음해에 간바쿠 히데쓰구에게 [[할복]]을 명하고 주라쿠 다이는 철거시켜 버린다. 히데요시는 주라쿠 다이의 건물 대부분을 후시미 성에 옮겨 쓰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