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갑 (193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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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한나라당]]에서 민정계인 '5·6공 인사 용퇴론'이 당 내에서 제기되었다. 그러자 김용갑은 5·6공 인사 용퇴론에 나는 5·6공 때의 내 역할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발언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용퇴론에 반발하는 모임을 가졌다가 기자들의 출입으로 다른 의원들이 자리를 피했으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소장파의 용퇴론을 반박하였다.
 
[[2004년 2월]]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비준 동의안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때 [[한나라당]] 내 소장파들은 김용갑의 공천을 반대하였으나 [[김문수 (1951년)|김문수]] 공천심의위원장은 그를 공천하였다.
 
[[2004년]]에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3선에 성공하였다.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기간 동안 그는 [[김대중]], [[노무현]]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하였고, 또한 [[이명박]]이 집권하며 [[한나라당]]이 여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에게도 쓴소리를 계속하여 보수 인사의 대명사로 일부 인사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2008년]]에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이후 [[한나라당]]의 상임고문으로 위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