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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 ==
* 1980년 서울대학교에서 신군부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 2009년 정년직후 경제사 중심의 뉴라이트 계열과 근현대사 역사연구자 등 양자를 공히 비판하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사료에 입각한 연구를 진행할 것을 강조하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261818445&code=940100]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만이 확대되어 보도되었다. 그러나 진보 논객이나 진보매체 기자들조차 <<조선일보>> 1면에 게재된 왜곡보도된 내용만 인용할 뿐, 정작 같은날과 다음날 <<한겨례신문>>, <<경향신문>>에 실린 뉴라이트 비판기사는 전혀 기억하지 않았다외면하였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조선일보>>를 바탕으로 비판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하였고, 진보매체 기자조차 자사 뉴스보다 보수매체를 신뢰하여 마치 뉴라이트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도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극단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이다.
* 2010년 5월 9일 일본내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연대하여 한일양국 지식인 200여명의 이름으로 한일병합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일본정부의 과거역사 재인식과 사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 등을 주도하였다. 최종 중국 지식인까지 가담하여 1,000여명이 서명하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5120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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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월 29일 와다 하루키, 김영호 등과 <2015 한일 그리고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 2010년 한일 양국 지식인을 넘어서 유럽과 미주 대륙의 지식인까지 함께 참여하여 일본정부의 우경화 및 위안부 문제를 비판하고 한일 양국의 진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역사 청산을 요구하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7291748321&code=960100]
* 2015년 10월 3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하여, 정부의 국정화는 반민주라고 비판하고 현행 검정본 교과서는 박근혜정부 청와대에서 열흘 이상 검토하여 좌편향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하였다. [http://www.nocutnews.co.kr/news/4496354]
* 2015년 11월 3일 정부의 한국사/역사 교과서 조기 국정화 고시에 맞서, 단독 기자회견을 열어서 현행 8종 모두 우파성향의 교과서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교과서 좌파몰이에 근거가 없다고 맹비난하였다. 또 검정당시 교학사 교과서의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정부에 공식적으로 보고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이 날은 국무총리와 교육부 장관의 국정화 발표가 있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5731.html]
 
==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