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 덩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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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컨이 제창하고 실천한 [[현대 무용]]의 새로운 무용 정신은 발레의 전통이 빚어내는 속박이 적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녀도 젊은 시절에는 당시 하나 밖에 방법이 없었던 [[발레]]를 습득하였으나, 태어나서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반항아였던 덩컨은 이윽고 고도로 세련되기는 했으나 제약이 많은 고전 발레의 인공적인 기법 본위의 무용에 의문을 품고, 더욱 더 자연과 자유에의 동경이 강렬해졌다. 덩컨은 처음으로 시카고의 무대에 올랐을 때 [[토우 슈즈]](발레 슈즈)도 던지고 [[팬티스타킹|타이즈]]도 입지 않은 채, 맨발에 거의 반나체의 모습으로 발레를 했고, 기교 본위의 발레 밖에 보지 못했던 관객의 조소를 받았다. 그녀는 몰이해한 조국에 실망하여 [[1900년]]에 유럽으로 건너갔다.
 
덩컨은 그 해 [[파리 (프랑스)|파리]]에서 그녀 나름의 독특한 새로운 무용을 발표, 그곳에서 처음으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공연하고, 각지에서 그녀가 주장하는 ‘자유댄스’를 발표·선전했으며, [[독일]]에서는 가장 강력한 지지를 획득했다. 독일은 ‘발레가 없는 나라’로 불려 육체 문화 운동이 활발했는데, 덩컨은 그 운동에 큰 영향을 주고 독일 신무용의 탄생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덩컨은 [[1904년]] [[베를린]]에 무용학교를 설립하였고, 그 뒤 [[프랑스]], [[미국]], [[소련]] 등에도 학교를 만들었다. 덩컨은 [[1905년]] [[러시아]]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나 [[미하일 포킨]]에게 강한 자극을 주었으며, 그러한 원동력으로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가 결성되었다.
 
이리하여 덩컨은 [[현대 무용]]의 융성을 촉구하고, 특히 독일의 현대 무용에 힘찬 목표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무용을 탄생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등 무용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