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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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연방 공화국 (1988-현재) ==
네윈은 1988년까지 군사 독재체제를 유지했지만, 경제정책의 실패로부터 심각한 인플레를 부르는 등, 버마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 1988년에는 네윈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나 네윈 장군은 7월에 BSPP 의장을 물러난다([[8888 항쟁]]). 같은 해 9월 18일에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총선거를 공약으로 했기 때문에, 전국에서 수백개의 정당이 결성되었다. 군부는 국민 통일당을국민통일당을 결성해 체제 유지를 도모했다.(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은 1989년 6월 버마(Burma)에서 현재의 미얀마(Myanmar)로 명칭을 바뀠다.) 민주화 지도자 [[아웅 산 수 지아웅산수찌]] 등은 [[민족민주동맹]](NLD)을 결성했지만, 아웅 산 수 지는아웅산수찌는 선거 전의 1989년에 가택연금 되었다. 이후, 그녀는 장기 연금과 해방을 반복해 겪었다. 1990년 5월의 총선거에서는 NLD와 민족 정당이 압승했지만, 군정은 선거 결과에 근거하는 의회 소집을 거부해, 민주화 세력의 탄압을 강화했다. 일부의 총선거 당선자는 국외로 피해 망명 정권으로서 [[버마 연방 국민연합정부]] (NCGUB)를 수립했다. 군사 정권은 1994년부터 2007년에 걸쳐 신헌법 제정을 향해서 기본 원칙을 심의하는 국민 회의를 단속적으로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10일 및 같은 달 24일에 신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 가결된 일로, 정권이 주장하는 개혁개방의 로드맵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2005년 11월, 정부 기관이 [[양곤]]으로부터 중부 [[핀마나]] 근교에 건설 중인 행정 수도로의 이전을 시작해, 2006년 10월 10일에 정식으로 행정 수도 [[네피도]]로의 천도를 공표했다. 2007년 9월 18일, 연료의 가격 인상을 배경으로, 불교 승려들이 대규모 반정부 데모를 해 참가자는 며칠 동안 수 만명 규모로 늘어났다. 그에 대해 군사 정권은 무력 탄압을 실시해,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가이 겐지]]를 포함해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2007년 미얀마 반정부 데모). 군부는 [[2008년]] 개헌 국민투표를 거쳐 이런 민주화 운동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