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조제프마리위스 앵베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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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교와 순교 ==
[[파일:Plaque_marking_the_relics_of_Saint_Laurent-Joseph-Marius_Imbert,_Cathedral_of_the_Good_Shepherd,_Singapore.jpg|thumb|right|싱가포르의 좋은 목자(Good Shepherd) 대성당에 있는 앵베르 성인의 성유물.]]
[[천주교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이던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입국을 앞두고 갑자기 [[죽음|선종]]하자, [[1836년]] [[4월 26일]] 앵베르는 [[천주교 조선교구]] 2대 교구장과 카프사(Capsa)의 명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1837년]] [[5월 14일]] 그는 [[조선]] 교우들의 인도로 [[만주]]를 통해 [[압록강]]을 건너 [[천주교]] [[박해]]가 행해지던 조선으로 잠입했다. 13일 후에는 그의 수행원들도 [[한양]]에 들어왔다. 그는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주교]]로서 그것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조선 대목구]]가 설정된지 6년 만이며 [[한국 천주교|조선 천주교]]가 창설된지 53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두 명의 프랑스인 사제 [[피에르 모방]] 신부와 [[자크 샤스탕]] 신부를 만났다. 그들은 그 기이하고 낯선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매우 열심히 일했다. [[1836년]]에 최초의 [[프랑스인]] [[선교사]] 모방 신부가 조선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국내의 [[천주교]] 신자의 수는 약 6천 명이었고, [[1839년]]에는 약 9천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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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ity control}}
 
 
{{생애|1797|1839}}
[[분류:1797년 태어남]]
[[분류:1839년 죽음]]
[[분류:프랑스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
[[분류:프랑스의 로마 가톨릭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