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포천-의정부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남북 관계 분류 정비
Gmldi (토론 | 기여)
303번째 줄:
이런 상황 하에서 북한군 전차대는 백석교를 속속 통과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때 다리 밑에 잠복한 2.36인치 로켓 분대장이 5번전차를 파괴시켰으나 후속전차가 발사한 포탄에 맞아 전사하였고 뜻밖에 전차 1대를 잃은 북한군은 충격을 받았는지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의정부 읍내로 되돌아갔다. 앞서 가던 전차 4대는 [[호원동]] 부근에 방어진지를 편성한 제16연대 2대대(대대장 소령 김헌)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데다가 후속전차가 없음을 확인한 듯 약 2km를 후퇴하여 노상에서 사격태세를 갖추고 후속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이들 전차와 격전을 치른 제16연대 2대대는 많은 피해를 입고 분산되었고 이날 밤 백석교 우측에 배치된 제25연대 11중대장 [[문일수]] 중위는 전차 특공대를 편성, 지휘하여 노상에 정지 중이던 북한군의 전차 4대를 습격하여 그 중 2대를 파괴하는 큰 전공을 세웠다. 다음날 6월 27일 새벽 북한군이 공격을 재개하자 제25연대는 결사적으로 싸웠으나 탄약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노원구|태릉]], [[능곡동 (고양시)|능곡]], [[수원]] 등지로 분산 철수하였다.
 
한편 육군사관학교장 [[이준식 (1900년)|이준식]] 준장은 6월 25일 13:00시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생도대대와 배속된 전투경찰대대를 391번 도로를 통제할 수 있는 내촌 부근의 감제고지에 배치하였다.
 
다음날 국군은 남하하는 북한군과 격전을 치른 후 [[노원구|태릉]]으로 철수하여 제9연대(25일, [[포천 전투]]에서 패하여 분산되면서 제1대대는 태릉 방면으로 이동하였었다.)와 더불어 [[불암산]]~[[노원구|태릉]]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미아리]]~[[노원구|태릉]] 방어선의 우측 일각을 담당하게 되었다.
 
== 결과 및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