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자 (1389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길재]]는 많은 제자를 길러 냈는데, 가장 먼저 입지를 세운 이가 김숙자였다. 이후 그의 제자들이 속속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특히 세조 때부터 김숙자와 [[김종직]] 부자 등 여러 신진 사류가 과거 급제 등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른바 ‘영남사림파 ’의 등장이었다. 이후에 [[이중환]]이 ‘[[택리지]]’를 통해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왔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김숙자 이후에 ‘영남사림파 ’의 발흥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628.010110742170001 영남사림의 기반을 구축한 김숙자(金叔滋)] 영남일보(2013.06.28) 기사 참조</ref>
 
== 가족 관계 ==
* 증조부 : 김광위(金光偉)
** 할아버지 : 김은유(金恩宥)
*** 아버지 : 김관(金琯)
*** 어머니 : 유인귀의 딸
**** 동생 : 김숙치(金叔淄)
**** 전처 : 한변의 딸
***** 장남 : 김종석(金宗碩)
**** 후처 : 박홍신의 딸
***** 차남 : 김종직(金宗直)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