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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 5년([[262년]]), 8월 16일에 부인 주씨([[주황후]])를 황후로 세웠고, 19일에 아들 [[손완]](孫𩅦)을 태자로 세웠다. 10월, 위장군 [[복양흥]]을 승상으로 임명하고, [[장포 (동오)|장포]]에게는 궁궐의 부서를 맡기고 [[복양흥]]은 군사와 행정을 담당하게 하고, 자신은 정무에서 옮겨 학문에 힘쓰고자 했다. 그리하여 박사좨주 [[위요]](韋昭), 박사 성충(盛沖)과 토론하고자 했으나, 위요와 성충이 자신의 과실을 드러낼 것을 꺼린 [[장포 (동오)|장포]]가 황당한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경제는 [[장포 (동오)|장포]]의 잘못을 지적하고 [[장포 (동오)|장포]]를 원망했으나, [[장포 (동오)|장포]]가 사죄하고 [[장포 (동오)|장포]]의 의심을 사는 것을 꺼려 결국 이 일을 작파하고 위요와 성충을 궁으로 들이지 않았다.<ref name="s48"/>
영안 6년([[263년]]) [[음력 5월|5월]], [[위 (삼국)|위나라]]에서 오나라의 우방 [[촉한|
영안 7년([[264년]]), 장수들을 보내어 촉으로 쳐들어가, 파동 수비대장 [[나헌]](羅憲)을 공격했다.<ref name="s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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