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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천 ==
[[1554년]]([[조선 명종|명종]] 9) 정규 관청으로 독자적인 합의기관이 되었고, 이듬해 [[을묘왜변]]이후 '''상설화''' 되어, 청사(廳舍)가 설치되어 도제조·제조·낭청이 정하여졌다. 비변사의 권한은 [[임진왜란]]·[[정유재란]] 이후 크게'''최고 강화되어기구화'''되어 일반 행정도 물론 정치·경제·외교·문화 등 국내의 일반 행정도 모두 협의·결정하게 되어 의정부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임진왜란 때부터 [[의정부]](전직 정승 포함)와 공조를 제외한 [[육조|5조]]의 판서와 참판이 비변사의 관직을 겸하였으며, 각 군영 대장, 대제학, 강화 유수 등 국가의 중요한 관원이 비변사에 참여하였다. 그에 따라 사실상 의정부의 기능을 대신하여 행정, 국방, 인사 등이 처리되었으므로, 지나치게 확대된 기능으로 인해 존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