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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족의 [[요나라]] 정벌은 연운 16주를 거란에게 바친 이후의 중국 군주들의 숙원사업이었고, [[북송 태조|조광윤]] 역시 북벌을 계획하던 중 급서했다. 즉위 초, 태종은 북한의 영토였던 베이징[北京]과 만리장성 사이에 위치한 연운16주(燕雲十六州)는 당시 거란족이 세운 요(遼:947~1125)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태종은 979년 5월 연운16국도 수복하고자 병력을 징발, 태원을 출발하여 [[요나라]]에 원정군을 보내지만, 대패하고 만다. 처음에는 두 개의 성을 손쉽게 공략하였지만, 지금의 베이징인 연경을 공략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본인도 화살을 맞고 상처를 입었으며, 무주공산이 된 지휘부를 대신하여 태조의 장자인 조덕소를 황위로 옹립하기 위한 움직임도 이 상황에서 발생하였는데, 결국 조덕소의 자결로 이 사태는 마무리 된다.
 
993년, [[팽산현]]의 [[현령]] [[제원진]]의 수탈에 대한 반발로 순화 4년 봄에 왕소파, 이순 등의 농민들이 쓰촨에서 봉기하였는데, 태종은 이때 황제의 옥새를 박은 문서를 내려 제원진을 두둔하였다. 3년여간에 걸친 내전은 결국 995년 [[성도]]가 함락되면서 약 5만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끝을 맺었다.<ref>중국역사이야기 3, 49p59p</ref>
 
내치를 착실하게 이뤄 과거시험으로 문관을 대거 채용하고, 감찰제도를 갖추어, 당시까지 군인정치의 폐해로부터 문치주의로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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