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디즈니랜드'''(Disneyland)는 [[월트 디즈니 회사]]의 부속 [[월트 디즈니 파크 앤 리조트]]가 운영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군 (캘리포니아 주)|오렌지 군]] [[애너하임]]에 위치한 [[테마파크]]이다. [[1955년]] [[7월 17일]] 언론 매체에게 예비로 공개하였으며, 다음 날 공식적으로 개장하였다. [[월트 디즈니]]는 개장 당시 유일한 테마파크였던 디즈니랜드가 고유의 특징을 살릴 수 있도록 건물들을 설계하고 건축하였으며, 개장 후에도 특별한 운영을 지도하였다.
 
최근까지 디즈니랜드에는 대통령과 왕족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귀빈을 포함하여 개장 이래 5억 1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였다.<ref>{{cite web인용|url=http://www.thefreelibrary.com/DISNEYLAND+BY+THE+NUMBERS.-a0131180096|제목=Disneyland by the numbers}}</ref> 1998년, 관련된 더 큰 규모의 [[디즈니랜드 리조트]]와 구별을 두기 위하여 "디즈니랜드 파크"로 브랜드명을 바꾸었다. 2007년에는 14,800,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공원을 방문하여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월트 디즈니 월드]]의 [[매직 킹덤]]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찾은 공원이 되었다.<ref>{{웹 인용 | url=http://www.connectingindustry.com/downloads/pwteaerasupp.pdf | 제목=TEA/ERA Theme Park Attendance Report 2007 | author= | work=www.themeit.com | date=[[2008-03-14]] | accessdate=2008-03-14 }}</ref>
 
디즈니 매직 킹덤 형식의 공원에서 발표하는 개장 연설은 플로리다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이 행복한 장소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로 시작하였다. 플로리다의 매직 킹덤 파크의 경우에는 다음 문장으로 연설을 시작하였다. "월트 디즈니 월드는 월터 엘리야스 디즈니의 철학과 삶에 보내는 선물입니다 ..." 한편 최초의 디즈니랜드 개장 연설은 다음과 같다.
많은 디즈니 영화의 팬들이 월트 디즈니에게 [[디즈니 스튜디오 (버뱅크)|디즈니 스튜디오]] 방문에 대한 편지를 보내왔다. 이 편지에는 스튜디오를 구경하고 캐릭터들을 만나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내용이 많았다. 월트는 이 편지들을 보고 영화 스튜디오에 방문객들을 위한 오락거리가 별로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자신의 [[버뱅크]] 스튜디오 건너편에 있던 강가를 가로지르는 1만 평 (8 에이커)의 부지에 "미키 마우스 공원"을 세우기로 구상하였다. 초기에는 보트와 여러 테마 공간이 있는 조그마한 공원을 기획하였다.
 
디즈니는 공원을 세우기 위해 [[티볼리 공원]], [[그린필드 빌리지]], [[어린이 동화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테마파크, 박물관, 박람회 등을 두루 다니며 공원 설계에 대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수집하였다. 그는 설계자들과 함께 구상한 일을 시작하였는데, 이때는 8 에이커보다 더 거대한 규모의 계획이 되어 있었다.<ref>{{cite web인용|url=http://www.justdisney.com/disneyland/history.html|제목=Disneyland History}}</ref>
 
월트는 스탠포드 연구소의 컨설턴트 해리슨 프라이스를 고용하여 발전 가능성이 있는 부지를 조사하였다. 프라이스의 조언으로 디즈니는 [[로스앤젤레스]] 동남쪽에 있는 애너하임의 오렌지와 호도밭 부지 20만 평 (160 에이커)을 매입하였다.<ref name="harrison">[http://www.gsb.stanford.edu/news/bmag/sbsm0405/feature_alumnibks_price.shtml Standford Alumni, Harrison Price] and [http://www.justdisney.com/disneyland/history.html Just Disney History]</ref>
자금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지자 디즈니는 새로운 자금 조달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시청하는 텔레비전을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곧 디즈니랜드라는 이름의 쇼를 만들어 ABC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신규 프로그램으로 방송하였다. 네트워크는 답례로 새로운 공원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운영 후 처음 5년 동안 디즈니랜드는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과 [[미국 방송 회사|ABC]]가 연대로 소유한 디즈니랜드 유한회사가 소유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Disney War |성=Stewart |이름=James B. |작성연도=2005 |출판사=Simon & Schuster|isbn=0684809931}}</ref> 1960년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은 ABC 주식을 매입하였다. 또한, U.S.A 메인 스트리트 지역의 많은 가게들은 디즈니로부터 부지를 임대 받은 다른 회사들이 소유, 운영하고 있다.
 
디즈니랜드 건설은 [[1954년]] [[7월 18일]] 시작하였으며, 정확히 1년 후 완성하는데 미국 돈 1700만 달러가 들었다.<ref>{{cite web인용|url=http://articles.latimes.com/2005/may/18/local/me-disneyland18|제목=Disneyland: From orange groves to Magic Kingdom}}</ref> 건설과 동시에 U.S. 101번 고속도로도 부지 북쪽에서 새로 만들어졌다. 디즈니랜드로 인한 교통 체증을 미리 대비하기 위하여 개장하기 전부터 두 개의 도로를 추가로 고속도로에 건설하였다.<ref name="harrison"/>
 
=== 1955년, 개장일 ===
디즈니랜드는 [[1955년]] [[7월 18일]] 월요일에 정식으로 일반 대중에게 개장하였으나 특별히 하루 전인 [[1955년]] [[7월 17일]] 일요일에는 일부 초청객과 언론인을 위한 "국제 언론 시연" 행사를 개최하였다. 개장 연설이 포함된 이 특별한 일요 행사는 할리우드에서 온 월트 디즈니의 친구 아트 링크레터, 밥 커밍스, 로날드 레이건이 사회를 맡았으며 전국의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하였다. ABC 방송국은 네트워크를 통해 이 행사를 생방송으로 중계하였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크고 복합적인 규모로 진행된 생방송 중 하나가 되었다.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공원에는 가짜 초청권을 통해 입장한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디즈니랜드 주변의 도로는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 섭씨 38도에 이르는 뜨거운 날씨가 이어졌으며, 준공일 직전에 벌어졌던 배관공들의 파업으로 인해 식수대도 작동하지 않았다. 공원 개장을 후원하였던 펩시는 뜻하지 않게 관광객들로부터 소다를 팔기 위해 식수대를 작동시키지 않는다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아침에 깐 아스팔트는 채 굳지 않아서 여성들이 신은 하이힐이 아스팔트에 박혀 버리기도 했다. 자동판매기의 음식은 모두 동이 났고, 환상의 나라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오후에는 모험의 나라, 개척의 나라, 환상의 나라를 모두 폐쇄하였다. 일부 부모들은 아더 왕의 회전목마에 자녀들을 태우기 위해 군중의 어깨 위로 자녀들을 던지기도 하였다.<ref>{{cite web인용|url=http://www.justdisney.com/Features/disneyland_opening/|제목=Disneyland Opening}}</ref>
 
행사가 열린 날의 공원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보도되자, 월트 디즈니는 언론인들이 디즈니랜드의 진정함을 체험할 수 있도록 "두 번째 날"에 다시 초청하였고, [[디즈니랜드 호텔 (캘리포니아)|디즈니랜드 호텔]]에서 파티도 열었다. 월트와 1955년 당시의 행정 부서에서는 이후 이 날을 계속 "검은 일요일"이라고 불렀다. 매년 7월 17일마다 디즈니랜드의 캐스트들은 유니폼에 1955년 7월 17일로부터 몇 년이 흘렀는지 표시하는 표를 꽂고 다닌다. 2004년 디즈니랜드의 슬로건은 "49년 전 오늘 마법이 시작되었다."였지만, 공원이 열린 지 12년부터 13년까지 디즈니는 7월 18일을 최초이자 정식으로 개장한 날로 표시하였다. 디즈니랜드는 1967년 7월 보도내용에서 1955년 7월 17일을 "헌정의 날"이라고 언급하였다.
7월 18일 월요일, 공원 입구에는 새벽 2시부터 줄이 생기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표를 사서 처음 공원에 들어온 관광객은 데이비드 맥퍼슨으로, [[로이 O. 디즈니]]가 입장권 번호 1번을 미리 구입해두었기 때문에 그의 입장권 번호는 2번이었다. 월트 디즈니는 맥퍼슨 다음으로 입장한 크리스틴 베스 왓킨스 (1955년 당시 5살)와 마이클 스치와트너 (1955년 당시 7살), 이 두 명의 아이들과 기념 촬영을 가졌다. 두 명의 사진에는 "월트 디즈니와 디즈니랜드의 첫 번째 두 손님"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베스 왓킨스와 스치와트너는 그날 디즈니랜드 평생 입장권을 받았으며, 맥퍼슨은 나중에 간략한 절차로 받았다. 이후 이 평생 입장권으로 전 세계 모든 디즈니 소유의 공원에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1959년 9월, 소비에트 연방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미국에서 13일 동안을 보냈다. 그는 두 가지 부탁을 하였는데,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는 것과, 할리우드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배우였던 [[존 웨인]]을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국무성 측에서는 신변 보호를 이유로 흐루쇼프의 디즈니랜드 방문을 취소하였다.<ref>{{cite web인용|url=http://seansrussiablog.org/2009/07/24/nikita-khrushchev-doesnt-go-to-disneyland/|제목=Nikita Khrushchev Doesn't Go to Disneyland}}</ref>
 
=== 1990년, 파크에서 리조트로 ===
[[파일:Attendance evolution of disneyland theme park.png|right|thumb|400px|디즈니랜드 파크의 입장객]]
{| class="wikitable"
|+ '''디즈니랜드 파크 입장객 통계 (단위: 100만명)'''<ref>{{cite web인용|url=http://www.thedisneyblog.com/tdb/2007/04/theme_park_atte.html|제목=Attedenance of Disneyland Park 1955-1979}}</ref><ref>{{cite web인용|url=http://www.islandnet.com/~kpolsson/disland/dl1975.htm|제목=Attendenance of Disneyland Park 1980}}</ref><ref>{{cite web인용|url=http://www.scottware.com.au/theme/feature/atend_disparks.htm|제목=Attendenance of Disneyland Park 1984-2005}}</ref>
|-----
! 연도
 
== 참고 문헌 ==
{{wikiquote위키인용집|Disneyland}}{{commons|Category:Disneyland}}
* {{서적 인용|제목=Disneyland: Inside Story|이름=Randy|성=Bright|출판사=Harry N Abrams|year=1987|id=ISBN 0-8109-0811-5}}
* {{서적 인용|제목=Window on Main Street|이름=Van Arsdale|성=France|출판사= Stabur|year=1991|id=ISBN 0-941613-17-8}}
* [http://www.ultimaterollercoaster.com/coasters/yellowpages/parks/disneyland_ca.shtml Disneyland Roller Coasters] 공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어트랙션 상세 정보
* [http://www.yesterland.com/ 예스터랜드] - 디즈니랜드의 운행 정지 어트랙션.
* {{wikivoyage위키여행|Disneyland Resort}}
* [http://davelandweb.com/disneyland 데이브랜드의 디즈니랜드 현재 & 과거 사진]
 

편집

1,314,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