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엽 (승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422번째 줄:
김원주는 자유연애를 지지하며 특히 봉건적 가부장제하의 여성정절 이데올로기에 대해 공격하였다. 그의 '신정조론'은 여성에게만 정절을 강요하는 차별적인 성윤리에 대한 대남성투쟁의 차원을 넘어서 '재래의 모든 제도와 전통과 관념에서 멀리 떠나 생명에 대한 청신한 의미를 환기코저 하는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의 인격과 개성을 무시하는 재래의 성도덕에 대하여 열렬히 반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조는 결코 도덕도 아니오, 단지 사랑을 백열화시키는 연애의식과 같이 고정한 것이 아니라 유동하는 관념으로 항상 새로울 것입니다…<ref name="nama2"/>'라고 하면서, 불륜도 하나의 취향이라 하였다. 다만 그는 정조를 부정하지는 않고 연인과 남편이 있을 때는 지켜야 된다는 절충적 입장을 보였다.
 
그는 진정한 사랑은 조건과 대가가 없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야 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 과정에서 [[성관계성교]]는 필수적인 것으로 규정지었다.
 
김일엽은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창녀라는 이분법적 시각에 저항하였다.<ref name="gyemong"/> 그는 불륜으로 간주되던 관계조차 과감히 인정하려 하였다. 그녀의 '자유연애론' 및 '신정조론'은 사회로부터의 이목이나 전통적인 윤리의식을 철저히 부정한 오직 '나'를 위한 의지의 발로이며, 또 그 이론을 직접 실천했다는 점에서 사회규범에 대한 정면 공격이었다.<ref name="nama2"/> 그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로운 연애를 할 수 있어야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