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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일기 중 [[1883년]] [[1월 1일]]부터 [[1887년]] [[11월 24일]]자 일기는 [[한문]]으로 썼다. 이 중 [[1883년]] [[1월 1일]]자 부터 [[1883년]] [[1월 16일]]자 일기 (음력 1882년 임오 음력 11월 22일~ 음력 12월 8일자)까지는 임오일기(壬午日記)라 부른다. 이는 [[윤치호]] 생전에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1934년]]의 《[[개벽]]》지 제1호에 실리기도 했다.
 
[[1883년]] [[10월 19일]]부터 [[1906년]] [[7월 3일]]까지의 윤치호 일기 수필원본은 30여 권의 대학공책과 종이 묶음, 수첩류 등에 기재되어 있다. [[1910년]]부터 [[1915년]] 사이의 일기는 실전되었는데 [[윤영선]] 등에 의하면 [[윤치호]]가 [[105인 사건]]으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끌려갔을 때 압수당하여 돌려받지 못했다 한다. [[1916년]]부터 [[1943년]]까지의 수필원본은 모두 [[미국]]산 규격 일기장 공책(13X19cm)에 기록되어 있다.
 
=== 시대상 및 사회상 ===
 
== 기타 ==
[[1883년]]부터 [[1943년]]까지의 일기이며 [[6.25 전쟁]]이 발생하자 [[개성]]에 있던 [[윤치호]]의 장남 [[윤영선 (1896년)|윤영선]]은 일기의 일부는 자신이 갖고 월남하고, 나머지 일제 강점기의 중요한 부분은 보존을 위해 [[미국]]에 체류중이던 윤장선에게 보냈다. 휴전 뒤 [[1968년]] [[윤영선 (1896년)|윤영선]]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자신이 소장하던 일부 내용을 기증하면서 미국에 있던 윤장선 역시 형에게서 받은 일부를 택배로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에 기증했다.
 
== 관련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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