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체 베아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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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베아토는 영국으로 돌아가 그 겨울 동안 [[인도]]와 [[중국]]에서 촬영한 400장의 사진을 런던의 상업 인물 사진작가인 헨리 헤링(Henry Hering)에게 매각했다. 헤링은 사진을 복제하고 판매했다. 가격은 사진 1장당 7실링이었고, 인도에서 촬영된 사진 전부가 54파운드 8실링,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 총 37파운드 8실링이었다. 당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연간 32파운드에 불과했고, 사진집의 가격은 이보다 높았던 셈이다.
 
==일본==
[[File:Satsuma-samurai-during-boshin-war-period.jpg|thumb|left|[[보신 전쟁]] 중에 [[사쓰마 번|사쓰마 번사]]]]
베아토는 [[1863년]]경 [[요코하마]]로 이주하여 [[1861년]]부터 그곳에서 살고 있던 [[찰스 워그먼]]과 함께 ‘비토 앤 워그먼 화실’(''Beato & Wirgman, Artists and Photographers'')을 설립하여, [[1864년]]부터 [[1867년]]까지 같이 일했다. 워그먼은 여기에서도 베아토의 사진을 바탕으로 삽화를 그렸다. 한편, 베아토는 워그먼 스케치와 작품을 촬영하고 있었다. 원래 ‘일러스트 런던 뉴스’의 삽화 화가였던 워그먼이 1860년 베이징 전쟁 취재 중에 현지에서 알게 된 종군 사진작가인 베아토를 초청하여 [[1863년]]에 일본으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아토가 일본에서 촬영한 것은 군용 사진 외에도 초상 사진, 풍속 사진, 명소, 도시 경관 등, 특히 [[우타가와 히로시게]]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를 연상시키는 [[도카이도]]의 풍경이 유명하다. 얼마 전까지 쇄국을 고수하고 있었던 만큼, 일본을 사진에 담아낸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베아토의 사진은 그 질뿐만 아니라 [[에도 시대]]를 촬영한 희소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베아토는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매우 활동적이었다. [[1864년]] [[시모노세키 전쟁]]의 종군 사진작가를 맡았다. 이듬해에는 [[나가사키]]와 그 근교의 사진을 발표했다. [[1866년]]부터는 워그먼이 경영했던 월간지 《재팬 펀치》에서 [[캐리커쳐]]로 자주 등장한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