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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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조선왕조실록은 총 1,894권 888책<ref>고종실록과「고종실록」과 순종실록까지「순종실록」까지 포함하는 견해를 받아들일 경우 총 1,967권 948책이 된다.</ref>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49,646,667자<ref>{{웹 인용|url=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p86erQ7l1cIJ:www.korea.kr/common/download.do%3FtblKey%3DGMN%26fileId%3D160974385+&cd=7&hl=ko&ct=clnk |제목=조간보도자료(조선왕조실록원스톱입체서비스).}}</ref> 의 방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10월 1일]]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 총 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 지정되었다.<ref name="훈조"/><ref>『조선왕조실록, 보존을 위한 기초 조사연구(1)』(송기중 신병주 박지선 이인성, 서울대학교출판부)</ref>
 
조선왕조실록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켜내기 위하여 매우 엄격한 규율에 따라 작성되었다. 왕의 실록은 반드시 해당 왕의 사후에 작성되었으며, 임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다.<ref>다만, [[조선 연산군]] 때는 임금이 열람한 적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ja_10407013_004&tabid=k 조선왕조실록 연산 30권, 4년(1498년 무오 / 명 홍치(弘治) 11년) 7월 13일(정미) 4번째기사)]</ref> 사관들은 독립성과 비밀성을 부여 받아 사소한 사항까지도 왜곡없이 있는 그대로 작성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신(史臣)은 논한다. …”라는 형식으로 사관의 의견(일종의 논평)을 적을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편찬될 때마다 여러 부를 활자로 더 인쇄하여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였기 때문에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 시기에도 그 기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편찬된 [[대한제국]]의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과 순종에 대한 실록은 국내외 상황이 불안정하여 편찬되지 못하고 있다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종태황제실록순종효황제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의 편찬 규례(사관이 작성한 사초를 바탕으로 집필해야 한다 등)에도 맞지 않고, [[일본 제국]]의 관점에 입각한 바가 크다고 판단하여 포함시키지 않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이 견해에 따라 조선왕조실록은 철종(哲宗) 때까지의 실록을 의미하고 있다.<ref>[[대한민국]]의 고등학교용 국사 교과서는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사실을 각 왕별로 기록한 편년체 역사서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2008, 국사편찬위원회·국정도서편찬위원회)</ref><ref>[[대한민국]]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조선 태조 때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 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쓴 사서."라고 정의하고 있다.([[대한민국 국립국어원|국립국어원]])</ref>
 
== 연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