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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번은 급진적인 [[존황양이론]]을 내세워 교토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1863년]]([[분큐]] 3년)에 [[아이즈 번]]과 [[사쓰마 번]] 등의 주도에 의한 ‘[[8월 18일의 정변]]’의 결과 변병을 해체하고, 교토에서 추방되어 번주 [[모리 다카치카]]와 아들 [[모리 사다히로]]는 나라에서 고향에 근신을 명령받는 등 정치적인 주도권을 상실했다. 한편, 교토와 [[오사카]]에 잠복한 몇 명의 조슈 존왕양이파는 잃어버린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행동을 계속했다.
 
정변을 통해 대외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급진적인 양이 노선은 후퇴했지만, 조정에서는 여전히 양이 주장이 계속되었고, [[1864년]]([[겐지]] 원년), [[요코하마 항]]의 쇄항 정책이 조정과 막부 쌍방에 의해 합의되었다. 그러나 막부 내의 대립 등으로 쇄항은 실행되지 않았고, 3월에는 쇄항 실행을 요구하면서 미토 번의 존왕양이파가 봉기를 하며 덴구당의 난을 일으켰다. 이러한 정세 속 각지의 존왕양이파 사이에서 조슈의 교토 정국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