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왕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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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Μακεδονία)라는 나라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낱말 '[[마케드노스]]'(μακεδνός)와 연관이 있다. 보통 이 낱말은 원래 '높은 것', '고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아마 [[고대 마케도니아인|이곳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을 것이다.<ref>{{웹 인용|url=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jsp?doc=Perseus:text:1999.04.0073:entry=makedno/s |제목=Georg Autenrieth, A Homeric Dictionary, μακεδνός |출판사=Perseus.tufts.edu|확인일자=2009-05-05}}</ref><ref>{{서적 인용|제목 = Etymologisches Wörterbuch des Griechischen
|저자 = Johann Baptist Hofmann |출판사 = R. Oldenbourg | 발행연도연도 = 1950}}</ref>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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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ergina2.jpg|섬네일|250px|오른쪽|[[베르이나]]에 있는 어느 왕릉의 입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짧은 시간에 그리스의 도시 국가는 물론이고 [[이집트]]를 비롯한 [[페르시아 제국]]에다가 동쪽으로 [[인도]] 접경까지 진출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당한 땅의 정치 형태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 문화를 퍼뜨렸다. 마케도니아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죽자 이내 여러 여러 헬레니즘 정권으로 갈라졌으나, 정복의 영향은 이어졌으며, [[헬레니즘]] 시대를 연 옛 페르시아 제국 서쪽 영토에 새로이 세워진 그리스어권 도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디아도코이]](후계자) 사이에 분할되면서, 마케도니아는 수년 뒤인 기원전 294년에 [[안티파트로스 왕조]]로 넘어갔다.
 
=== 헬레니즘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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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오스의 아들 [[안티고노스 2세]]는 용병 [[갈라티아|갈라티아인]]의 침략을 무찌르고, 마케도니아에서 왕가의 위상을 되찾았다. 그는 질서와 번영을 회복하였으나, 여러 그리스 도시 국가의 통제권을 잃고 말았다. 안티고노스는 [[안티고노스 왕조]]하의 안정적인 군주정 체제를 세웠다. [[안티고노스 3세]]는 그리스 지역에 마케도니아의 패권을 다시 확립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에 마케도니아 정권은 여타 헬레니즘 군주 국가에서 도입한 방식과 달리, 옛 고졸기의 왕권 개념을 유지한 유일한 후계 국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리하여 마케도니아의 임금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나 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처럼 신격화되지 않았으며, [[프로스퀴네시스]](προσκύνησις, 페르시아식으로 높은 계급 사람 앞에서 엎드려 예를 표하는 관습) 관습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다른 디아도코이 나라에서 자신들을 신민으로 여긴 것보다 훨씬 허물없이 임금을 대하였으며, 임금은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 여전히 귀족들과 상의하였다.
 
=== 로마와 충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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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p Macedonia 200 BC-fr.svg|섬네일|200px|필리포스 5세 시대의 마케도니아 왕국]]
 
[[필리포스 5세]]와 아들 [[마케도니아의 페르세우스|페르세우스]] 시대에 마케도니아 왕국은 새로이 떠오르는 강국 [[로마 공화정|로마]]와 충돌하였다. 기원전 2~1세기에 마케도니아는 로마와 일련의 전쟁을 벌였다. 마케도니아는 기원전 197년에 필리포스 5세가, 기원전 168년에는 페르세우스가 로마에 대패하였다. 마케도니아의 패배로 안티고노스 왕가는 폐위되고, 왕국은 분할되었다. 기원전 149년에 '가짜 필리포스' [[안드리스코스]]가 잠시 왕국을 복원하였으나, 이듬해에 로마에 패배하고, 마케도니아는 로마에 직접 지배를 받게 되어 [[마케도니아 속주]]가 설치되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