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만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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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로''와 ''모가미''는 미국 전함의 16인치 함포와 14인치 함포에서 발사된 다수의 철갑탄 외에도 미국 구축함의 공격으로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시구레''는 뱃머리를 돌려 퇴각하고자 하였으나 조향력을 잃고 완전 정지하였다. ''야마시로''는 함대 사령관인 니시무라 중장, 함장인 시노다 가쓰키요({{lang|ja|篠田勝清}}) 대령 등과 함께 04:20에 침몰하였으며, ''모가미''와 ''시구레''는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남방군의 후위를 담당하는 시마 함대는 타이완의 [[마궁 시|마코 해군기지(Mako Guard District)]]에서 출발하여 도중인 10월 24일 [[술루 해]]에서 미국 측의 공격을 받아 ''와카바''가 격침되고 아홉 척이 되어 니시무라 함대의 후방 35 해리(64&nbsp;km)에서 수리가오 해협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마 함대의 레이더는 다수의 섬에서 나타나는 난반사에 의하여 거의 무용지물이였으며, 특히 어뢰정과 같은 작은 함정은 거의 탐지하지 못하였다.<ref>Tully (2009), p. 167.</ref> 결국 경순양함 ''아부쿠마''가 미국 어뢰정 PT-137이 쏜 어뢰를 맞고 낙오했다. 여덟 척으로 줄어든 시마 함대는 퇴각중인 니시무라 함대의 잔존 병력과 마주친다. 전함 ''후소''의 두동강난 잔해를 본 시마 중장은 니시무라 함대에 소속된 두 전함이 모두 침몰한 것으로 판단하고 함대에 후퇴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후퇴 과정에서 함대 기함인 중순양함 ''나치''가 8노트의 저속으로 퇴각중이던 니시무라 함대의 중순양함 ''모가미''를 정지해 있는 것으로 오인, 접근하다 충돌하여 ''모가미''의 조타실이 침수된다. 시마 중장은 낙오한 ''아부쿠마''와 크게 손상된 ''모가미''에게 구축함 ''우시오''와 구축함 ''아케보노''를 각각 호위함으로 파견하여 퇴각시키려 했으나 미국측의 공습을 받아 ''모가미''는 최종적으로 생존 승무원을 ''아케보노''로 옮겨태우고 자침시키기에 이르고, ''아부쿠마'' 역시 미국측의 공격으로 격침되었다. 한편 뱃머리 부분이 손상되어 표류하던 ''아사구모''는 ''모가미''와 ''시구레''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져 있다가 미국측 공격으로 침몰했다. 이로써 니시무라 함대 소속 일곱 척의 전투함 중 ''시구레''만이 살아남아 수리가오 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ref>''시구레''는 "呉の雪風、佐世保の時雨"{{해석|구레의 유키카제, 사세보의 시구레}}라고 칭해질 정도로 구레 진수부 소속의 구축함 ''유키카제''와 함께 전투에서의 생존률이 높은 배였다. 그러나 이 ''시구레''도 약 3개월 뒤인 1945년 1월 24일, 말레이반도 근처에서 미 해군 잠수함 ''블랙핀''(USS Blackfin, SS-322)에게 격침되어 37명의 전사자가 발생한다.</ref> 한편 시마 함대의 전투함은 열 척 중 24일 격침된 ''와카바'', 25일 낙오 후 26일 격침된 ''아부쿠마''를 제외한 여덟 척이 수리가오 해협 전투에서 살아남았으나, 이후에 레이테만에서 대부분 격침된다.<ref name="Morison1956"/><ref name="Howard1999"/>
 
수리가오 해협 전투는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이루어진 두 번의 '전함 대 전함' 전투 중 하나이며,<ref>다른 하나는 과다카날 전역 중에 이루어진 [[과다카날 해전]]</ref> 역사상 마지막 '전함 대 전함' 전투이다. 또한 역사상 마지막으로 ''[[정자전법]](Crossing the T)''이 사용된 전투였다. 그러나 수리가오 해협 전투에서 정자전법이 사용된 시점은 이미 일본군 함대가 세 척의 전투함만 남아있는 약화된 상태였으므로, 전투의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ref name="Morison1956"/><ref name="Howard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