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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규'''(林仙圭, <small>일본식 이름: </small>林中郞, [[1914년]]? ~ [[1970년]]?)는 [[한국]]의 연극인, 극작가이다. 본명은 임승복(林勝福).<ref>{{뉴스 인용
|저자=조영복
* 조영복, [|url=http://nk.chosun.com/news/news.html?ACT=detail&res_id=3906&page=1 월북지식인들의 행로(6) - 임선규] 《조선일보》 (2001.2.4)
|제목=월북지식인들의 행로(6) - 임선규
|출판사=조선일보
|작성일자=2001-02-04
|확인일자=20098-02-18}}</ref>)는 [[한국]]의 연극인, 극작가이다. 본명은 임승복(林勝福).
 
[[1914년]] [[충청남도]] [[논산시|논산]]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0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는 등 어린 시절과 문단 데뷔 무렵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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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극의 전형적인 소재인 가정 비극을 통속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는 임선규의 작품은 자연스러운 일상적 대사와 기교적 구성, 관객을 울리는 처절함이 특색이며, 한국적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의 연극은 지방 공연될 때 몰려드는 관객 때문에 배우들이 묵을 숙소가 없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하는 연극 경연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친일일제에 협력하는 활동을 했다. 조선총독부가 친일 연극 단체로 결성시킨 [[조선연극문화협회]]의 이사를 맡았으며, 지원병 제도를 찬양하는 《동백꽃 피는 마을》을 발표하고 관제 연극경연대회에는 《빙화》, 《꽃피는 나무》, 《상아탑에서》를 잇따라 출품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연극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 [[남로당]] 계열에서 활동하였으나, 우익계[[김두한]]에 청년들의의한 [[심영]] 테러가 공공연히 자행되어자행되는 등 활동이 불가하게 되자, [[1948년]] 부인 문예봉을 뒤따라 월북했다. [[북조선]]에서의 활동은 잘 알려진 바가 없다. 일찍부터 앓고 있던 [[폐결핵]]으로 인해 [[1970년]]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문예봉과는 달리 북조선의 문예사 기술에서 임선규의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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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800쪽
}}
* 조영복, [http://nk.chosun.com/news/news.html?ACT=detail&res_id=3906&page=1 월북지식인들의 행로(6) - 임선규] 《조선일보》 (2001.2.4)
* 이재명, 〈조선연극문화협회의 활동을 통해서 본 친일 연극〉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5년 하반기 워크숍)
 
== 주석 ==
[[분류:1914년 태어남]]
<references/>
 
[[분류:1970년 죽음]]
[[분류:일제 강점기의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