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56번째 줄:
 
== 인물 ==
* [[정유산]] (鄭惟産, ? ~ 1091년) : 1062년(문종 16)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국자감시(國子監試)를 관장하였는데, 이때 시권(試券)에 봉미(封彌)하는 법을 처음 시행하였다. 1069년(문종 23) 상서좌승 우간의대부(尙書左丞右諫議大夫)가 되었으며, 1071년 한림학사가 되고, 다음해에는 한림학사 국자좨주(翰林學士國子祭酒)로서 지서북면추동번병마사(知西北面秋冬番兵馬使)를 겸임하였다. 1073년 2월 섭형부상서(攝刑部尙書)를 겸하였으며, 12월 예부상서가 되었다. 이듬해 4월 지공거(知貢擧)로서 이하(李蝦)·윤관(尹瓘) 등을 뽑았다. 1075년(문종 29) 참지정사 감수국사(參知政事監修國史)가 되고, 이어 이부상서가 되었다. 1077년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시호는 정순(貞順).
* [[정중부]] (鄭仲夫, 1106년 ~ 1179년) : 고려 명종을 옹립한 뒤 [[무신정권]]을 수립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가 되었고, 1172년 서북면판사행영병마 겸 중군병마판사(西北面判事行營兵馬兼中軍兵馬判事)가 되었다. 1179년(명종 9) 새로운 실권자 [[경대승]](慶大升)에게 피살되었다.
* 정빈철 : 판지주사 [예의판서 김남기의 장인]
* 정언 (鄭琂) : 고려(高麗) 때 소부 소윤(少府少尹)을 지내고 정헌대부(正憲大夫)ㆍ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 정윤경 (鄭允卿) : 고려조(高麗朝)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하였다.
* 정윤경 (鄭胤慶) : 자는 향수(鄕數). 생원 변(忭)의 아들 조선 전기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 정윤규 (鄭允珪) : 고려 때 정용낭장(精勇郎將) 판예의사사(判禮儀司事)을 지냈다.
* 정윤진 (鄭允珍) : 고려에서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역임하였다.
* 정을경 (鄭乙卿) : 자(字)는 선보(善輔), 호(號)는 해정어수(海亭漁叟). 부사 인노(仁老)의 아들. 조선초기에 남양부사(南陽府使)와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내고 좌의정(左議政)에 추증되었다
* [[정역 (조선)|정역]] (鄭易, ? ~ 1425년) : 자는 순지(順之), 호는 백정(柏亭). 아버지는 정용낭장 판예의사사(判禮儀司事) 윤규(允珪)이며, 어머니는 대사성 설문우(薛文遇)의 딸이다.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장인이다. 1383년(우왕 9) 이방원(李芳遠)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여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좌정언ㆍ교주도안렴부사(交州道按廉副使)ㆍ사헌부지평ㆍ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등을 역임하고, 1411년(태종 11)에 한성부윤으로 정조부사(正朝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다음해 대사헌이 되었다. 1414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예조ㆍ형조의 판서를 지내고, 1416년 대제학을 거쳐 호조판서가 되었다. 1419년(세종 1)에 판한성부사ㆍ좌찬성, 다음해에 호조판서를 거쳐 집현전 대제학(集賢殿 大提學)이 되었다. 사림의 중망(重望)으로 4조(朝)를 섬기는 데 한결같았고, 내외의 자손 수십명에 복록을 겸비하였으나 더욱 스스로 겸손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도(貞度)이다.
* 정초(鄭初또는礎) : 조선 태종 때 전라도 도진무사(全羅道都鎭撫使) 겸 도절제사(都節制使)를 거쳐 진서 대장군(鎭西大將軍)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