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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악욕]](惡欲)들 가운데 하나이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5265&DTITLE=%B1%FD 欲]".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梵語 caitta, caitasika,巴利語 cetasika。又作心數、心所有法、心所法、心數法。從屬於心王。乃五位之一。與心相應而同時存在,為種種複雜之精神作用。以從屬於心,故對心所而言,心謂「心王」。心王與心所之間,有所謂五義平等(所依平等、所緣平等、行相平等、時平等、事平等)之相應關係,故心所又稱相應法、心相應法。離此心王,是否別有心所之體,對此,有部主張別體說,其他諸派另有多種異說。<br>
有關心所之數及其分類之方法,有種種說法。小乘俱舍論立受、想、思、觸、欲、慧、念、作意、勝解、三摩地等十大地法(相應於一切心之心所);信、不放逸、輕安、捨、慚、愧、無貪、無瞋、不害、勤等十大善地法(相應於一切善心之心所);癡、放逸、懈怠、不信、惛沈、掉舉等六大煩惱地法(指一切污染心而言,即與不善心、有覆無記心共通而相應之心所);無慚、無愧等二大不善地法(僅相應於一切不善心之心所);忿、覆、慳、嫉、惱、害、恨、諂、誑、憍等十小煩惱地法(與無明相應,而不能同時起兩種以上之心所);惡作、睡眠、尋、伺、貪、瞋、慢、疑等不定地法(上五類以外之心所);總共六位,計立四十六心所。此外,如正法念處經卷三十三,就上述大善地法中,以無癡取代無瞋;大毘婆沙論卷四十二則列舉七類心所,即大地法、大善地法、大煩惱地法、大不善地法、小煩惱地法、大有覆無記地法、大無覆無記地法等,而列舉四十九心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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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타마 붓다]]가 설한 [[3독]](三毒) 즉 [[불선근]](不善根) 가운데 하나이다.{{sfn|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T.99|loc=제9권 제252경 〈우파선나경(優波先那經)〉.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02n0099_p0061a26 T02n0099_p0061a26 - T02n0099_p0061b17]. 3독(三毒)|
貪欲瞋恚癡 世間之三毒<br>
如此三毒惡 永除名佛寶<br>
法寶滅眾毒 僧寶亦無餘<br>
破壞凶惡毒 攝受護善人<br>
佛破一切毒 汝蛇毒今破"}}{{sfn|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K.650, T.99|loc=제9권 제252경 〈우파선나경(優波先那經)〉.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3&startNum=333 333 / 2145]. 3독(三毒)|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br>
이 세간의 세 가지 독,<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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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을 거두어 보호하네.<br>
깨달은 자(부처)는 모든 독을 쳐부수니<br>
너 뱀독도 이젠 부수어졌느니라."}}{{sfn|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T.99|loc=제24권 제613경 〈불선취경(不善聚經)〉.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02n0099_p0171c23 T02n0099_p0171c23 - T02n0099_p0171c26]. 불선근(不善根)|
착하지 않은 무더기[不善聚]와 착한 무더기[善聚]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무더기인가? 세 가지 착하지 않은 뿌리[不善根]이니 이것은 바른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순전히 착하지 않은 무더기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 가지 착하지 않은 뿌리란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탐욕의 착하지 않은 뿌리[貪不善根]와 성냄의 착하지 않은 뿌리[恚不善根]와 어리석음의 착하지 않은 뿌리[癡不善根]이니라."}}{{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171&DTITLE=%A4T%ACr 三毒]".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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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타마 붓다]]가 설한 [[5개]](五蓋) 가운데 '''탐욕개'''(貪欲蓋)에 해당한다.{{sfn|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T.99|loc=제26권 제707경 〈장개경(障蓋經)〉.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02n0099_p0189c15 T02n0099_p0189c15 - T02n0099_p0189c25]. 5개(五蓋)와 7각지(七覺支)|
다섯 가지 장애[障]와 덮개[蓋]가 있어서,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게 하고 지혜를 약하게 한다. 그것은 막고 걸리는 물건으로, 밝음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이 아니어서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탐욕개(貪欲蓋)·진에개(瞋恚蓋)·수면개(睡眠蓋)·도회개(掉悔蓋)·의개(疑蓋)를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개(蓋)는 은폐하고 덮어서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게 하고 지혜를 약하게 한다. 그것은 막고 걸리는 물건으로, 밝음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이 아니어서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7각지(覺支)는 은폐하는 것도 아니요, 덮어 가리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에 번뇌가 일어나게 하지 않고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며, 밝음이 되고 바른 깨달음이 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떤 것이 그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염각지(念覺支) 등……(내지)……사각지(捨覺支)까지의 내용은 앞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7각지는 가리는 것이 아니요 덮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에 번뇌가 일어나게 하지도 않고 지혜를 더욱 자라나게 하며, 밝음이 되고 바른 깨달음이 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느니라."}}{{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916&DTITLE=%B3g 貪]". 2012년 10월 31일에 확인. 탐(貪)과 5개(五蓋)·10악(十惡)|
(1) 탐욕개(貪欲蓋). 끝없이 탐하는 번뇌.
(2) 진에개(瞋恚蓋). 성내는 번뇌. 화내는 번뇌. 증오하는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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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에서 6가지 [[근본번뇌]](根本煩惱) 즉 [[6수면]](六隨眠) 가운데 '''탐수면'''(貪隨眠)에 해당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3723&DTITLE=%AE%DA%A5%BB%B7%D0%B4o 根本煩惱]".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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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교]]{{.cw}}[[부파불교]]{{.cw}}[[대승불교]]의 [[9결]](九結) 가운데 '''애결'''(愛結)에 해당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621&DTITLE=%B5%B2 結]". 2012년 12월 28일에 확인. 9결(九結)|
(五)九結。雜阿含經卷十八、阿毘達磨發智論卷三、辯中邊論卷上等列舉愛、恚、慢、無明、見、取、疑、嫉、慳等九種煩惱為九結。此係六種根本煩惱(將「見」分身、邊、邪三見,稱為見結;見取見與戒禁取見合併為取結)加上嫉結、慳結,而成九結。大毘婆沙論卷五十說九結之體(自性)共有一百種。〔雜阿含經卷三十二、大毘婆沙論卷四十六、卷四十九、成實論卷十雜煩惱品、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六〕(參閱「九結」、「四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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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10악]](十惡) 가운데 '''탐욕'''(貪欲)에 해당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916&DTITLE=%B3g 貪]". 2012년 10월 31일에 확인. 탐(貪)과 5개(五蓋)·10악(十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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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타마 붓다]]가 설한 [[12연기]](十二緣起)의 교의에서 제8지분인 '''애'''(愛)에 해당하고, 제2지분인 [[행 (불교)|행]](行), 제4지분인 [[명색]](名色), 제9지분인 [[취 (불교)|취]](取)에 속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653&DTITLE=%A4Q%A4G%A6]%BDt 十二因緣]". 2012년 11월 6일에 확인|
梵語 dvādaśāvgapratītya-samutpāda。十二種因緣生起之意。又作二六之緣、十二支緣起、十二因緣起、十二緣起、十二緣生、十二緣門、十二因生。即構成有情生存之十二條件(即十二有支)。
(一)阿含經所說根本佛教之基本教義,即:無明(梵 avidyā)、行(梵 sajskāra)、識(梵 vijñāna)、名色(梵 nāma-rūpa)、六處(梵 sad-āyatana)、觸(梵 sparśa)、受(梵 vedanā)、愛(梵 trsnā)、取(梵 upādāna)、有(梵 bhava)、生(梵 jāti)、老死(梵 jarā-marana)。據長阿含卷十大緣方便經載,緣癡有行,緣行有識,緣識有名色,緣名色有六入,緣六入有觸,緣觸有受,緣受有愛,緣愛有取,緣取有有,緣有有生,緣生有老、死、憂、悲、苦惱大患所集,是為此大苦陰緣。即此十二支中,各前者為後者生起之因,前者若滅,後者亦滅,故經中以(大一‧六七上)「此有故彼有,此生故彼生;(中略)此無故彼無,此滅故彼滅」之語,說明其相依相待之關係。即一切事物皆具有相依性,皆由因、緣所成立,故說無常、苦、無我。<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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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 (불교)|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가운데 하나이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4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20a20 T29n1558_p0020a20 - T29n1558_p0020a22]. 부정심소(不定心所)|
다시 이 밖에도 부정(不定)의 심소로서 악작(惡作)·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법이 존재한다.<sup style="color: blue">51)</sup>
<br /><sup style="color: blue">51)</sup>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대선지법·대번뇌지법·소번뇌지법의 4품 이외 선·염오·무기 무엇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진(瞋)·만(慢)·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마흔여섯 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 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권제21에서 설명되고 있다 "}}{{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3311&DTITLE=%A4%AD%A6%EC%A4C%A4Q%A4%AD%AAk 五位七十五法]". 2012년 10월 30일에 확인. 부정심소(不定心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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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 (불교)|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번뇌심소]](煩惱心所: 6가지) 가운데 하나이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614|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4_p0855b23 T31n1614_p0855b23 - T31n1614_p0855c06]. 심소유법(心所有法)|
<br />分為六位。一遍行有五。二別境有五。三善有十一。四煩惱有六。五隨煩惱有二十。六不定有四。
<br />一遍行五者。一作意二觸三受四想五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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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四煩惱六者。一貪二嗔。三慢四無明。五疑六不正見。
<br />五隨煩惱二十者。一忿二恨。三惱四覆。五誑六諂。七憍八害。九嫉十慳。十一無慚十二無愧。十三不信十四懈怠。十五放逸十六惛沈。十七掉舉十八失念。十九不正知二十散亂。
<br />六不定四者。一睡眠二惡作。三尋四伺。"}}{{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1b15 T31n1585_p0031b15 - T31n1585_p0031b18]. 번뇌심소(煩惱心所)|
12煩惱謂貪瞋 癡慢疑惡見<br />
論曰。此貪等六性是根本煩惱攝故。"}}{{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304 304-305 / 583]. 번뇌심소(煩惱心所)|
번뇌심소는 탐(貪)·진(瞋)·<br />
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이다.<sup style="color: blue">124)</sup><br />
논하여 말한다. 이 탐 등 여섯 가지는 체성이 근본번뇌에 포함되기 때문에 번뇌심소라고 이름한다.
<br /><sup style="color: blue">124)</sup> 번뇌심소 여섯 가지를 밝힌다. 모든 번뇌의 근간인 근본번뇌를 일으키는 심소이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3314&DTITLE=%A4%AD%A6%EC%A6%CA%AAk 五位百法]". 2012년 10월 30일에 확인. 번뇌심소(煩惱心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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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계]]의 [[탐 (마음작용)|탐]]인 '''[[욕탐]]'''(欲貪) 또는 '''[[욕탐수면]]'''(欲貪隨眠)과 [[색계]]와 [[무색계]]의 [[탐 (마음작용)|탐]]인 '''[[유탐]]'''(有貪) 또는 '''[[유탐수면]]'''(有貪隨眠)으로 나뉜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9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99a16 T29n1558_p0099a16 - T29n1558_p0099a26]. 탐(貪)|
여기서 유탐은 무엇을 본질로 삼는 것인가?
이를테면 색계와 무색계 중의 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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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sup style="color: blue">20)</sup> 즉 욕탐수면(欲貪隨眠)은 대개 외적 대상 즉 5욕경(欲境)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외문전(外門轉)이다}}
탐(貪)은 '''갈애'''(渴愛, {{llang|sa|[[:en:trsnā|<span style="color: black">trsnā</span>]]}}: 무명을 바탕하여 구하고 원하는 것){{sfn|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T.99|loc=제13권 제334경〈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有緣有縛法經)〉.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02n0099_p0092b24 T02n0099_p0092b24 - T02n0099_p0092c10]. 갈애(渴愛)|
무엇을 〈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 · 有緣 · 有縛法經)〉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안식[眼]에는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며 속박시키는 자[縛]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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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如是], 비구들이여, 부정사유(不正思惟: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 8정도의 정사유의 반대)는 무명(無明)을 원인[因]으로 하여 갈애[愛, 집착, 애욕]가 된다[不正思惟因無明為愛].
[이와 같이] 무명을 원인으로 하여 갈애(집착, 애욕)가 생기고[無明因愛], 갈애(집착, 애욕)를 원인으로 하여 업(業, 즉 염오(染污)한 업)이 생기고[愛因為業], 업(염오(染污)한 업)을 원인으로 하여 [갖가지로 오염된, 즉 갖가지 번뇌에 물든, 즉 3계의 색경에 속박된] 안식[眼]이 생긴다[業因為眼]. 이식[耳] · 비식[鼻] · 설식[舌] · 신식[身] · 의식[意]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을 일러 〈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緣 · 有縛法經]〉이라 한다."}}{{sfn|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K.650, T.99|loc=제13권 제334경〈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有緣有縛法經)〉.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3&startNum=503 503-504 / 2145]. 갈애(渴愛)|
어떤 것을 눈의 인·눈의 연·눈의 얽맴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눈은 업(業)이 그 인이고 업이 연이며 업이 얽매는 것이다.
업에도 인이 있고 연이 있으며 얽맴이 있다. 어떤 것을 업의 인·업의 연·업의 얽맴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업에는 애욕[愛]이 인이 되고 애욕이 연이 되며 애욕이 얽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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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에도 인이 있고 연이 있으며 얽맴이 있다. 어떤 것을 무명의 인·무명의 연·무명의 얽맴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명에는 바르지 않은 사유[不正思惟]가 인이고 바르지 않은 사유가 연이며 바르지 않은 사유가 얽매임이다.
바르지 않은 사유에도 인이 있고 연이 있으며 얽맴이 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사유의 인·바르지 않은 사유의 연·바르지 않은 사유의 얽맴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눈과 색을 인연하여 바르지 않은 사유가 생기고 어리석음이 생기나니, 눈과 색을 인연하여 바르지 않은 사유를 일으키고 어리석음을 일으키면 '''그 어리석음[癡]이 곧 무명(無明)이니라. 어리석음[癡]으로 구하고 욕심내는 것을 애욕[愛]이라 하며''', 애욕이 짓는 것을 업이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바르지 않은 사유를 인하여 무명이 되고 애욕이 되며, 무명을 인하여 애욕이 되고, 애욕을 인하여 업이 되며, 업을 인하여 눈이 되느니라. 귀·코·혀·몸·뜻도 또한 이와 같같나니, 이것을 일러 유인유연유박법경이라고 하느니라."}}{{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A%B0%88%EC%95%A0&rowno=1 渴愛(갈애)]". 2012년 11월 9일에 확인|
謂違背緣起之理,而迷妄的執著實我、實法或假名言相。亦即顯現我執、法執之相。大乘起信論(大三二‧五七七上):「計名字相,依於妄執,分別假名言相故。」又(大三二,五五七中):「計我、我所種種妄執。」
依唯識宗所說,我執、法執有分別起與俱生起二種:(一)分別起之我執與法執,係受邪教及邪師等說之影響,由後天而起,乃吾人經驗上的意識現象之領域,故此類妄執易斷。(二)俱生起之我執與法執,乃吾人生起分別意識以前本來具有者,即無始以來,為執著我、法之虛妄所薰習而與生俱來者,此乃真正之妄執。
俱生起之我執與法執其「相續」分為間斷、無間斷二種。前者屬現象的意識作用之第六意識,後者屬於較第六意識更微細之第七末那識,故末那識為妄執之根源,亦即其當體。末那識最顯著之作用,係以阿賴耶識之見分為對象,於見分生起我相及自心相,以此執著實我、實法。其本質為我癡、我見、我愛、我慢等。又於末那識所起之我執與法執極微細而難斷,若多修習殊勝之生空觀、法空觀則能斷除。"}}{{.cw}}'''미착'''(味著: 맛들여 집착함){{.cw}}'''욕'''(欲: 탐욕의 줄임말로서의 욕){{.cw}}'''애'''(愛: 갈애 또는 애착의 줄임말로서의 애){{.cw}}'''애욕'''(愛欲){{.cw}}'''애착'''(愛著, 愛着){{.cw}}'''애탐'''(愛貪){{.cw}}'''염애'''(染愛: 오염된 좋아함){{.cw}}'''염착'''(染著){{.cw}}'''집착'''(執著, 執着){{.cw}}'''탐독'''(貪毒: 독으로서의 탐){{.cw}}'''탐애'''(貪愛){{.cw}}'''탐욕'''(貪欲){{.cw}}'''탐욕개'''(貪欲蓋){{.cw}}'''탐착'''(貪著, 貪着){{.cw}}'''탐착'''(耽著: 그릇된 몰입과 들러붙음; 耽은 깊이 빠져서 열중하여 즐기는 것, 著은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D%83%90%EC%9A%95&rowno=1 貪欲(탐욕)]".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916&DTITLE=%B3g 貪]".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921&DTITLE=%B3g%B1%FD 貪欲]".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sfn|세친 조, 현장 한역|T.1612|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2_p0849a06 T31n1612_p0849a06]. 탐(貪)|
<br>5취온(取薀)에 대하여 사랑의 오염으로 탐착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이것은 결박하고, 삼계에 윤회하게 하여 괴로움을 낳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삼는다. 애착의 힘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5취온을 낳는다."}} 말하자면, 탐(貪)은 [[대상 (불교)|대상]]에 들러붙어서[著, 着, attachment, 들러붙음] 떠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욕계]]를 비롯한 [[3계]]의 온갖 [[법 (불교)|법]](法)에 들러붙어 있어서 그것을 [[원리 (불교)|멀리 떠나]][遠離]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수염 (불교)|수염]]'''(修厭: 싫어하는 마음을 닦는 것)을 닦으면 탐욕[欲]을 떠날 수 있고, 탐욕[欲]을 떠날 수 있으면 [[해탈]]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대승오온론]]》과 《[[성유식론]]》 등에 따르면,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무탐]](無貪)의 [[마음작용]]과 [[상응]]함으로써 탐(貪)의 [[마음작용]]을 [[대치 (불교)|대치]](對治)할 수 있는데,{{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a04 T31n1585_p0030a04 - T31n1585_p0030a05]. 무탐(無貪)심소|
<br /><sup style="color: blue">25)</sup> 무탐(無貪, alobha)심소는 애착심을 없애는 심리작용이다. 여기에는 5취온(取)뿐만 아니라 열반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것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열반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원인이 되어 3계 윤회의 과보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br /><sup style="color: blue">26)</sup> 유(有)는 3유(有:三界)의 과보[果], 즉 윤회의 삶을 말한다.
<br /><sup style="color: blue">27)</sup> 유구(有具)는 3유(有), 즉 윤회의 삶의 원인[因]이다."}}{{sfn|황욱|1999|p=55. 무탐(無貪)심소|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有와 有具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體로 하고, 악행에 빠지지 않는데 의지가 되는 것을 業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sup style="color: blue">182)</sup>
<br /><sup style="color: blue">179)</sup> ‘有’란 三有의 果 즉 三界의 果報, 다시 말해서 ‘有情의 五蘊’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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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sup style="color: blue">181)</sup> ‘無貪’의 性用은 有과 有具에 대하여 애착을 없게 하는 작용을 말하며, 그 業用은 貪着을 對治하고 善을 짓게 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곧, 無貪은 迷惑의 세계에 살면서 생존에 집착하지 않는 심리작용을 가리킨다.
<br /><sup style="color: blue">182)</sup>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64b09 664中]).
“何等無貪。謂於有有具無著為體。惡行不轉所依為業。”"}}{{sfn|세친 조, 현장 한역|T.1612|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2_p0848c25 T31n1612_p0848c25]. 무탐(無貪)심소|
이러한 [[수염 (불교)|수염]](修厭)의 실천 또는 탐(貪)의 대치와 관련된 내용으로, 《[[성유식론]]》에서는, 탐(貪) 등의 [[불선근]](不善根)을 끊기 위해서는 공통 [[대치법]](對治法)과 개별 [[대치법]]을 둘 다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 [[대치법]]이란 오직 [[선혜]](善慧), 즉 [[선 (3성)|선]](善)의 상태의 [[혜 (마음작용)|혜]](慧, 지혜)로써 탐(貪){{.cw}}[[진 (마음작용)|진]](瞋){{.cw}}[[치 (마음작용)|치]](癡) 모두를 [[대치 (불교)|대치]](對治)하는 것이며, 개별 대치법이란 [[탐 (마음작용)|탐]](貪)에 대해서는 [[무탐 (마음작용)|무탐]](無貪)으로써, [[진 (마음작용)|진]](瞋)에 대해서는 [[무진 (마음작용)|무진]](無瞋)으로써, [[치 (마음작용)|치]](癡)에 대해서는 [[무치 (마음작용)|무치]](無癡)로써 [[대치 (불교)|대치]](對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탐(貪)을 끊기 위해서는 [[선혜]](善慧)와 [[무탐 (마음작용)|무탐]](無貪)의 2가지 [[마음작용]]으로 [[대치 (불교)|대치]](對治)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a21 T31n1585_p0030a21 - T31n1585_p0030a23]. 불선근(不善根)|
{{인용문|多聞聖弟子如是觀者便'''修厭'''。厭已離欲。離欲已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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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02n0099_p0014b20 한문본] &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3&startNum{{=}}74 한글본]}}
[[고타마 붓다]]의 이 진술에서의 [[욕탐]](欲貪)이 탐(貪)의 [[마음작용]]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 간에 서로 견해 차이가 있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4258&DTITLE=%A4%AD%A8%FA%C4%AD 五取蘊]". 2013년 2월 27일에 확인|
梵語 pañca upādāna-skandhāh,巴利語 pañc' upādāna-kkhandhā。又作五受陰。即由取(煩惱)而生或能生取之有漏之五蘊。指色取蘊、受取蘊、想取蘊、行取蘊、識取蘊。大毘婆沙論卷七十五釋之,謂若色有漏有取,彼色在過去、未來與現在,或起欲,或起貪、瞋、癡、怖,或復隨起一心所隨煩惱,稱為色取蘊。其餘受、想、行、識等亦如是廣分別。論中並分別蘊與取蘊之差異,謂蘊通有漏、無漏,取蘊則唯通有漏。<br>
又就取蘊之名義而論,俱舍論卷一謂一切煩惱總稱為取,蘊從取生,或蘊屬取,或蘊生取,故稱取蘊。然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則特以諸蘊中所有之欲貪稱為取,以取合故,稱為取蘊。〔雜阿含經卷三、法乘義決定經卷上、瑜伽師地論卷六十五、成唯識論卷一、成唯識論述記卷一末、成唯識論掌中樞要卷上末、俱舍論光記卷一〕 p1103"}} (자세한 내용은 {{nowrap|'[[욕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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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 탐의 본질적 성질 ==
'''집착'''(執著, 執着)은 어떤 [[사물 (불교)|사물]](事物) 혹은 [[사리 (불교)|사리]](事理)에 늘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ref>"[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6290000 집착(執着)]",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2월25일에 확인.<br>"집착(執着):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ref> 달리 말하면, 허망한 분별심[分別之心] 즉 [[무명 (불교)|무명]](無明)으로 인해 [[마음 (불교)|마음]]이 어떤 [[사물 (불교)|사물]] 혹은 [[사리 (불교)|사리]]를 '''고집'''(固執: 단단히 붙잡고 있음)하고 있어서 [[사 (마음작용)|사]](捨: 버림, 4무량심의 하나인 捨無量心)의 상태로 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계착'''(計著)'''{{.cw}}계착'''(繫著){{.cw}}'''미집'''(迷執){{.cw}}'''집'''(執) 또는 '''착'''(著)이라고도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8%91%97&rowno=1 繫著(계착)]". 2012년 12월 25일에 확인|
就「能執」之識體,安慧與護法二大論師主張不同,安慧認為於吾人諸識之中,第五識、第八識皆有法執,第七識有人執,第六識通人法二執;護法則以第五識、第八識為無執,唯第六識、第七識有執。另就「執」與「障」之別,成唯識論演秘卷一本謂執皆為障,以執限於有能取、所取二分者;障則通於業、果之非心、心所法,故障不一定為執。又執障為「我執煩惱障」、「法執所知障」之略稱。此外固執事物而不捨離之心,稱為執心、執著心;己心固執之而不捨離之見解,即種種之妄見,稱為執見;執著之妄情,稱為執情。〔大乘入楞伽經卷四無常品、大般若經卷四八五、成唯識論卷九、俱舍論卷十九〕"}}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여러 논서들에 따르면, 탐의 [[본질적 성질]]은 집착이다.
예를 들어, 《[[구사론]]》에서는 '''탐'''의 본질적 성질을 사물 또는 존재에 대해 깊이 '''미착'''(味著: 맛들여 집착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9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99a16 T29n1558_p0099a16 - T29n1558_p0099a26]. 탐(貪)|
여기서 유탐은 무엇을 본질로 삼는 것인가?
이를테면 색계와 무색계 중의 탐이다.
203번째 줄:
<br /><sup style="color: blue">18)</sup> 즉 어떤 이들은 색계와 무색계에서의 존재[有]를 해탈한 존재라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한 것으로, 이생 외도는 무상천(無想天)의 5백 대겁 동안의 무상을 진실의 해탈로 간주한다. 본론 권제5 (p.217) '무상정' 참조"
<br /><sup style="color: blue">19)</sup> '유(有)'란 내외의 일체의 존재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상 2계의 소연을 의미할 경우 정려심과 그 소의지(所依止)인 신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즉 상계의 유정은 이미 욕탐을 떠났기 때문에 외적 경계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오로지 선정과 자신에 대해서만 미착(味著)하기 때문이다.
<br /><sup style="color: blue">20)</sup> 즉 욕탐수면(欲貪隨眠)은 대개 외적 대상 즉 5욕경(欲境)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외문전(外門轉)이다}}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애착'''[愛]을,{{sfn|무착 조, 현장 한역|T.1605|loc=제1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64b24 T31n1605_p0664b24]. 탐(貪)|
삼계에 대한 애착이 그 바탕이다. 중고(衆苦)가 생겨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대승오온론]]》에서는 '''염애'''(染愛: 오염된 좋아함)와 '''탐착'''(耽著: 그릇된 들러붙음)을 탐의 [[본질적 성질]]로 들고 있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612|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2_p0849a06 T31n1612_p0849a06]. 탐(貪)|
== 악욕으로서의 탐 ==
212번째 줄:
[[욕 (마음작용)|욕]](欲: 원함, 욕구, 희망, 하고자 함)에는 [[선 (3성)|선]](善)과 [[상응]]한 [[욕 (마음작용)|욕]](欲)인 [[선욕]](善欲)과 [[악 (3성)|악]](惡)과 [[상응]]한 [[욕 (마음작용)|욕]](欲)인 [[악욕]](惡欲)이 있다.
[[선욕]](善欲)은 [[정진 (마음작용)|정진]](精進, 勤)의 [[마음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악욕]](惡欲)은 [[정진 (마음작용)|정진]](精進, 勤)의 [[마음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5265&DTITLE=%B1%FD 欲]".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br /><sup style="color: blue">163)</sup> 欲의 性用은 所樂境을 희망하는 작용을 의미하며, 그 業用은 勤[精進]이 희망에서 生起하는 작용을 뜻한다. 欲은 意慾이나 희망을 말하는 것으로 業力이나 境界勢力에 따라서 별다른 희망없이 任運히 境을 緣할 때에는 이 欲心所가 일어나지 않고 作意로서 관찰하고자 할 때 희망이 솟구쳐 欲心所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br /><sup style="color: blue">164)</sup>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64a27 p.664上]).
“何等為欲。謂於所樂事彼彼引發所作希望為體。正勤所依為業。”"}}
[[악욕]](惡欲)들 중에서 타인의 재물(財物: 돈이나 그 밖의 값나가는 모든 물건<ref>"[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2462200 재물(財物)]",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ref>), 즉 돈 등의 재화나 공적, 명예 또는 지식을 빼앗거나 가로채거나 도용함으로써 자기 것으로 할려는 [[욕 (마음작용)|욕구]][欲: 원함, 희망, 하고자 함], 즉 불변의 [[인과법|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스스로를 [[상응]]시키는 [[정정진|바른 노력]](정정진) 없이 쉽게 얻으려는 [[욕 (마음작용)|욕구]][欲: 원함, 희망, 하고자 함]가 곧, [[불선근]]이자 [[근본번뇌]] 중의 하나인, 탐(貪)의 [[마음작용]]이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5265&DTITLE=%B1%FD 欲]".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 미착으로서의 탐 ==
{{참고|욕탐과 유탐}}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세친]]의 《[[구사론]]》에 따르면, '''탐'''(貪)은 [[욕계]]의 [[탐 (마음작용)|탐]]인 [[욕탐]](欲貪)과 [[색계]]와 [[무색계]]의 [[탐 (마음작용)|탐]]인 [[유탐]](有貪)으로 나뉜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9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99a16 T29n1558_p0099a16 - T29n1558_p0099a26]. 탐(貪)|
여기서 유탐은 무엇을 본질로 삼는 것인가?
이를테면 색계와 무색계 중의 탐이다.
232번째 줄:
<br /><sup style="color: blue">20)</sup> 즉 욕탐수면(欲貪隨眠)은 대개 외적 대상 즉 5욕경(欲境)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외문전(外門轉)이다}}
'''욕탐'''(欲貪)은 [[욕계]] 중의 [[유정 (불교)|유정]]이 외적 대상[境]에 대해서 깊이 미착(味著: 맛들여 집착함)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색계]]와 [[무색계]] 중의 [[유정 (불교)|유정]]은 외적 대상[境]에 대해서는 미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지 (불교)|등지]](等至, 선정, 정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7%AD%89%E8%87%B3&rowno=1 等至(등지)]". 2012년 10월 30일에 확인. 等至(등지)|
【범】 samāpatti 삼마발저(三摩鉢底)라 음역. 정(定)의 다른 이름. 마음과 몸이 평등·안온하여지는 것을 등(等)이라 한다. 정(定)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등의 상태에 이르게 하므로 등지라 함."}}{{sfn|阿含辭典|loc="[http://agama.buddhason.org/ad/adSearch.php?keyword=%E4%B8%89%E6%91%A9%E9%89%A2%E5%BA%95&button1=%E6%9F%A5++%E8%A9%A2 三摩鉢底]". 2013년 3월 16일에 확인|
<br>正受:
音譯「三摩鉢底」(samāpatti),另義譯為「等至」,字面上的意思,「三摩」(samā)是「正」,即「正確地」,「鉢底」(patti)是「獲得;得達;到達;達到」,合起來是指1.進入初禪以上(根本定)之定境,故另譯為「正定現前」。2.單存地指「達成;達到;進入」,如「初禪正受」、「隨意正受」。"}}{{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8755&DTITLE=%A5%BF%A8%FC 正受]". 2013년 3월 16일에 확인|
梵語 samāpatti,巴利語同。音譯作三摩鉢底、三摩拔提、三摩[足*我]。意譯等至、正定現前。遠離邪想而領受正所緣之境的狀態。亦即入定時,以定之力使身、心領受平等安和之相。又定心而離邪亂稱為「正」,無念無想而納法在心稱為「受」,猶如明鏡之無心現物。觀經玄義分(大三七‧二四七下):「言正受者,想心都息,緣慮並亡,三昧相應,名為正受。」或謂正受為三昧、三摩地(梵 samādhi)或禪定之異名。<br>
蓋正受新譯「等至」,據大毘婆沙論卷一六二載,等持、三摩地、等至三者有異,以等持僅通於有心定,等至則廣通有心、無心定。俱舍論卷二十八,以四禪、四無色定為等至。大乘義章卷十三,以滅盡定、無想定之無心定為等至。又慧遠之觀無量壽經義疏卷末及智顗之觀無量壽佛經疏卷下等,就觀無量壽經中所說「教我思惟、教我正受」之語有所論述,謂散善之三福業為思惟,定善之十六觀為正受。〔雜阿含經卷十七、舊華嚴經卷十一功德華聚菩薩十行品、菩薩地持經卷九、解脫道論卷二、瑜伽師地論卷六十七、雜阿毘曇心論卷七〕(參閱「三昧」580、「三摩鉢底」673、「定」3171) p1989"}}{{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117&DTITLE=%A4T%BC%AF%B2%DA%A9%B3 三摩鉢底]". 2013년 3월 16일에 확인|
梵語 samāpatti,巴利語同。音譯作三摩拔提、三摩[足*我]。意譯等至、正受、正定現前。指由遠離惛沈、掉舉等,而使身心達於平等安和之境。即身心安和之狀態,為三摩地之進境。依俱舍論卷二十八,四靜慮及四無色定為根本八等至,其中四靜慮及下三無色定等七者,各有味等至、淨等至、無漏等至三種,有頂地則僅有味等至與淨等至。<br>
有關三摩鉢底與三摩地(等持)之差別,大毘婆沙論卷一六二中列舉數種說法,有說等持以一物為體,等至以五蘊為體。有說等持為一剎那,等至則相續。有說諸等持即等至,而等至非是等持,如無想等至、滅盡等至即屬之。有說亦有等持非是等至,如不定心相應等持即屬之。又依俱舍論光記卷六所載,三摩地通於定、散及善、惡、無記等三性,唯有心平等,持心趣向於境,故稱等持。三摩鉢底則通於有心定與無心定二種,唯在定,不通於散。此外,亦有說三摩鉢底即禪定之異名者。又梁譯攝大乘論釋卷十一中,於三摩鉢底略舉境、眾類、對治、隨用、隨引、由事等六種體類差別。〔瑜伽師地論卷十一、十地經論卷五、雜阿毘曇心論卷七、俱舍論卷五、成唯識論述記卷六本、瑜伽論略纂卷一、卷五〕(參閱「三昧」580、「正受」1989) p673"}})나 [[소의지]](所依止), 즉 그들의 '존재 자체[自體]', 즉 [[유 (불교)|유]](有)에 대해서는 깊이 미착함이 있는데 이와 같이 [[유 (불교)|유]](有)에 대해 깊이 미착하는 것을 '''유탐'''(有貪)이라고 한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9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99a16 T29n1558_p0099a16 - T29n1558_p0099a26]. 탐(貪)}}{{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19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859 859 / 1397]. 탐(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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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주요 논서인 《[[성유식론]]》에 따르면, '''탐'''(貪)은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유 (불교)|유]](有: 윤회하는 삶)와 [[유구]](有具: 유의 원인, 즉 윤회하는 삶을 가져오는 원인)에 대해 '''염착'''[染著: 오염된 집착, 즉 탐착]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性]로 하는 [[마음작용]]이다.
그리고 [[무탐 (마음작용)|무탐]](無貪)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유정 (불교)|유정]]의 삶에서 [[괴로움]][苦]을 일으키는 것을 [[본질적 작용]][業]으로 하는 [[마음작용]]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1b19 T31n1585_p0031b19 - T31n1585_p0031b20]. 탐(貪)심소|
<br /><sup style="color: blue">125)</sup> 탐(貪, rāga)심소는 ‘탐욕’, 즉 애착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 특히 윤회하는 삶과 그 원인인 5온 나아가 열반에 대해서까지 애착심을 일으킴으로써 고통을 자초한다."}}{{sfn|황욱|1999|p=59. 탐(貪)심소|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삼계에 대한 애착심을 體로 하고, 衆苦가 생겨남을 業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sup style="color: blue">201)</sup>
<br /><sup style="color: blue">200)</sup> ‘貪’의 性用은 윤회하는 삶[有]와 그 원인[有具]에 대하여 染着하는 작용을 말하고, 그 業用은 無貪을 장애하여 苦를 생기게 하는 작용을 말한다. 곧, 貪은 미혹의 세계에서 생존에 집착하기 때문에 苦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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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탐'''(貪)은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애착'''[愛, 愛著, 染愛: 오염된 좋아함]의 힘을 일으키고 증대하게 함으로써 [[취온]](取蘊), 즉 [[번뇌]]에 물든 [[색온]](물질, 육체){{.cw}}[[수온]](지각){{.cw}}[[상온]](표상){{.cw}}[[행온]](의지, 욕구){{.cw}}[[식온]](마음, 지식, 앎, 인식)이 생겨나게 하는 [[마음작용]]으로, [[취온]](取蘊)의 상태는 곧 [[괴로움]]의 상태, 즉 [[생사윤회]]가 계속되는 상태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1b19 T31n1585_p0031b19 - T31n1585_p0031b20]. 탐(貪)심소}}{{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305 305 / 583]. 탐(貪)심소}}{{sfn|황욱|1999|p=59. 탐(貪)심소}}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세친]]은 《[[구사론]]》에서, [[윤회]]의 근본원인은 [[무명 (불교)|무명]](無明)이지만, [[무명]]을 일으켜 생사를 [[윤회]]하게 하는 실제적인 가장 큰 원인은 전도(顚倒)된 [[수온]](受蘊)과 [[상온]](想蘊), 즉 [[수취온]](受取蘊)과 [[상취온]](想取蘊)이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타마 붓다]]는 본래 [[행온]]에 속한 [[수온]]과 [[상온]]을 따로떼서 [[5온]]의 2요소로 세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4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05b08 T29n1558_p0005b08 - T29n1558_p0005b17]. 윤회의 가장 큰 원인|
諍根生死因 及次第因故<br />
於諸心所法 受想別為蘊<br />
論曰。諍根有二。謂著諸欲及著諸見。此二受想。如其次第為最勝因。味受力故貪著諸欲。倒想力故貪著諸見。又生死法以受及想為最勝因。由耽著受起倒想故。生死輪迴。由此二因及後當說次第因故。應知別立受想為蘊。"}}{{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4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41 41 / 1397]. 윤회의 가장 큰 원인|
게송으로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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